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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34) 오차즈케의 맛 | 그 부부는 왜 함께 ‘오차즈케’를 먹었을까

김소연 기자
입력 : 
2025-03-12 10:03:39
수정 : 
2025-07-08 14: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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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차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만난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모티브로 ‘알아두면 쓸 데 많은, 재미있는’ 차 이야기를 술술 읽어나갈 수 있게 풀어낸 스토리텔링 연재물입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면 매월 1회 ‘차(茶라)는 렌즈를 통해 풍성한 문화·예술·역사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 공유는 콘텐츠 제작과 전파에 큰 힘이 됩니다.

사진설명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익히 알 만한 이름이 있다.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조와 함께 일본 영화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미국 영화에 존 포드, 프랑스 영화에 장 르누와르가 있다면 일본 영화엔 오즈 야스지로가 있다”는 말도 있다. 지난해 10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이야기’와 ‘동경의 황혼’이 재개봉되면서 다시 한번 이슈가 됐다.

감독의 대표작 ‘동경 이야기는(1953)’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전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다. ‘사이트 앤 사운드’라는 영국 영화 잡지가 있다. 1952년부터 10년마다 전 세계 영화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2012년 조사에서 ‘동경 이야기’는 ‘현기증’ ‘시민 케인’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2022년 조사에서는 4위로 내려 앉았지만, 동양 영화로는 최고 순위다. 20위까지 왕가위 감독 ‘화양연화’(5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7인의 사무라이’(20위) 등 세 편이 올라있다.)

‘동경 이야기’는 ‘다다미 쇼트(Shot)’라는 이름의 독보적인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만들어낸 ‘다다미 쇼트’는 방바닥 생활을 하는 일본인 눈 높이에 맞춰 카메라를 앉은 키 정도에 맞추고, 롱 테이크로 잡아내는 독특한 촬영 기법이다. 다다미방을 배경으로 한다 해서 ‘다다미 쇼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다다미 쇼트’는 일본 영화의 독특한 미학을 대표하는 카메라 움직임으로 자리잡았다.

오늘의 영화가 ‘동경 이야기’? No No~ 오늘의 영화는 오즈 감독의 또다른 명작 ‘오차즈케의 맛’이다. 오즈 감독은 가족 이야기에 천착했다. 오늘날로 치면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독특한 가족 영화를 많이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비슷한 결이라고 할까. ‘오차즈케의 맛’도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는 영화다. 근데 왜 제목이 하필 수많은 맛을 놔주고 ‘오차즈케의 맛’일까?

김 뿌리면 ‘노차즈케’ 도미 올리면 ‘다이차즈케’
와사비·연어·절인 매실(우메보시) 올리기도
사진설명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모키치 사타케는 중상류층 가정을 일군 전형적인 모범가장이다. 착실하고 일밖에 모르고 부인한테 화도 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미안하다” 사과하고, 부인이 놀러가고 싶어 거짓말로 터무니없는 상황을 지어 둘러대도 모른척 넘어가준다. 모키치와 선을 봐 결혼한 다에코는 그런 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답답한 둔탱이’라고 놀려댄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조카 세츠코(다에코가 세츠코의 고모)는 자신은 절대 선 봐서 결혼하지 않겠다며 엄마가 주선한 선 자리에서 도망친다….

영화에서 ‘오차즈케’는 아주 중요한 모티브다. 어느날 다에코가 집에 왔는데 모키치가 밥에 물을 말아 먹고 있다. ‘오차즈케’다. 다에코는 식사 시중을 드는 하녀에게 “평소 이렇게 드시냐?”며 “개밥 먹는 것처럼 이거 뭐냐”고 일갈한다. 당황한 모키치는 또 “미안하다”며 “당신이 싫으면 앞으로는 이렇게 먹지 않겠다”고 얘기한다.

영화 끝부분 즈음에 다시 오차즈케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두사람이 함께 오차즈케를 먹는다. 다에코는 오차즈케에 올릴 절임채소를 준비하기 위해 된장에 박아둔 절임채소를 꺼내어 직접 썰어낸다. 그리고 함께 오차즈케를 맛있게 먹는다.

이 지점에서 제목 ‘오차즈케의 맛’이 너무나 직설적인 화법으로 다가온다. 오차(お茶)는 ‘따뜻한 녹차’를 의미하고 ‘즈케(漬け)’ 는 ‘담그다’ ‘적시다’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다. ‘오차즈케’는 밥에 따뜻한 녹차를 부어 먹는 음식이다. 다만, 무더운 여름에는 차가운 녹차를 부어 오차즈케를 만들어 먹는다. 그 위에 다양한 고명을 올리는데, 고명에 따라 이름이 조금씩 달라진다. 김을 뿌리면 ‘노차즈케’ 도미를 올리면 ‘다이차즈케’ 와사비를 올리면 ‘와사비차즈케’ 등으로 부르는 식이다. 연어나 절인 매실(우메보시)을 올리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아스카 시대(590년경)부터 물에 밥을 말아 먹는 문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과 같은 오차즈케를 먹기 시작한 것은 녹차를 서민들도 마시기 시작한 에도 시대다. 당시 상인들이 일을 하다 빨리 밥을 먹고 다시 가게 일을 하기 위해 밥에 녹차를 부어 후다닥 먹기 시작했다는 스토리다. 상인뿐 아니라 사무라이도 오차즈케를 즐겼다. 특히 전쟁터에서 제대로 된 밥을 먹기 어려울 때 오차즈케를 많이 먹었다. 1950년대 이후 일본 경제 급성장기에는 직장인들이 점심을 빨리 먹고 다시 업무를 보기 위해 오차즈케를 즐겼다.

뭔가 정석적인 식사라기보다는 시간이 없어 급하게 허기를 채워야 할 때 주로 오차즈케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역사적으로 상인, 하급 사무라이 등 주로 서민층이 먹는 음식이었다. ‘오차즈케의 맛’ 영화에서 다에코는 여유로운 가정에서 고생 모르고 자라 괜찮은 남자와 선을 본 후 결혼해 유한마담이 되어 어떻게 잘 놀까만 궁리하는 여성이다. 이 같은 전후 스토리를 감안하면 다에코가 그렇잖아도 센스 없고 둔탱이라고 흉보는 남편이 오차즈케를 먹는 것을 보며 ‘개밥 운운~’ 하는 상황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남편과 함께 오차즈케를 먹으며 웃는 장면도. 이쯤 되면 ‘오차즈케의 맛’이 왜 직설적인 화법인지 고개가 끄덕여지시려나.

오차즈케는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일본 3대 인물 중 오다 노부나가가 즐겼던 음식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입이 엄청 짧은 데다 소화기관이 약한 노부나가는 특히 장어를 올린 오차즈케를 즐겼다는 썰~이 있다. 노부나가는 일본 다도 역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다. 특히 다도구에 관해서는 심미안(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하여 살피는 마음의 눈)도, 욕심도 가히 1위라 할 만하다 일컬어진다.

노부나가는 일본 전국 통일 직전인 1582년 6월 2일 최측근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일명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한다. 불과 49세 나이였다. 노부나가는 아케치에게 전장에 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도우라 명했는데, 아케치는 전장에 나가는 척하다 1만여 병력을 돌려 노부나가가 있던 혼노지(혼노사)로 와 노부나가를 죽인다. (일본판 위화도 회군인 셈. 위화도회군은 고려 말 우왕이 이성계 장군에게 요동 정벌을 명하자 요동으로 가던 이성계가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가서 정변을 일으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사건)이 소식을 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급히 자신의 대군을 데리고 혼노지로 와서 아케치를 물리치고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천하인이 된다. 천하인은 사실상 천하를 제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인물을 가리킨다.

혼노지의 변은 6월 2일 새벽에 일어났고 6월 1일부터 혼노지에 머물렀던 노부나가는 6월 1일 혼노지에서 성대한 다회를 연다. 그날 다회는 노부나가가 소장한 당대의 명물 다구를 전시하고 자랑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당시 다회는 그냥 사람들이 모여 차를 마시는 모임이 아니었다. 다회는 아무나 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다회를 연다는 것은 다회를 열 수 있을 만큼 권력이 있음을 의미했다. 노부나가는 또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수에게 줄 토지가 부족해지자 토지 대신 다회를 열 수 있는 권리를 하사할 만큼 다회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했다.

6월 1일 다회를 위해 노부나가는 38개의 다도구를 들고 왔다. 다도구 중 일본에서 최고 명물로 꼽히는 것이 ‘차이레(말차가루를 넣는 차통)’다. 차이레는 보통 갈색의 도자기 통에 나무 뚜껑, 상아 뚜껑 꼭지로 구성돼 있다. 당시 일본에 3대 차이레가 있었는데 각기 ‘닛타’ ‘하츠하나’ ‘나라시바’라 이름이 붙었다. 모두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으로 ‘하츠하나’는 양귀비가 소유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닛타’와 ‘하츠하나’는 노부나가가 소유했고, ’나리시바‘는 거상 시마이 쇼시츠 소유였다. 노부나가는 40여 명의 귀족과 거상들을 혼노지 다회에 초청했는데 시마이도 포함돼 있었다. 그 자리에서 노부나가는 시마이에게 ’나리시바‘를 넘기라 종용하지만, 시마이는 “이것은 목숨보다 소중한 차 단지라 넘길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일본 권력자들의 명물다구에 대한 욕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최고 명물로 꼽히던 3개의 말차통(차이레) 쟁탈전이 치열했다. 3개 명물 차이레를 모두 손에 넣어야 ‘천하인’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만화 <효게모노>中
일본 권력자들의 명물다구에 대한 욕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최고 명물로 꼽히던 3개의 말차통(차이레) 쟁탈전이 치열했다. 3개 명물 차이레를 모두 손에 넣어야 ‘천하인’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만화 <효게모노>中

10㎝ 도자기 차통 ‘하츠하나’ 성 3채와 맞먹는 가격
‘닛타’ ‘하츠하나’ ‘나라시바’ 3대 명물 쟁탈전 치열
왼쪽이 ‘낫타’ 오른쪽이 ‘하츠하나’ 차아레. 둘 다 3대 명물 차이레에 포함된다. 현재 나고야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왼쪽이 ‘낫타’ 오른쪽이 ‘하츠하나’ 차아레. 둘 다 3대 명물 차이레에 포함된다. 현재 나고야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다회가 벌어진 그날 새벽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 노부나가가 사망했다. 이후 3대 차이레는 어떻게 됐을까. 명물은 늘 1인자가 가졌다. 세 개의 차이레는 모두 차례차례 도요토미 히데요시 손에 들어갔다가 고스란히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로 넘어갔다. 그중 시마이가 끝끝내 노부나가에게 넘기지 않으려 했던 ‘나리시바’는 큰 화재에 소실됐고, ‘닛타’와 ‘하츠하나’는 나고야 도쿠가와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끽해야 높이 10㎝ 남짓한 도자기 차통이 명물이라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냐고? No No~ 당시 하츠하나 가격이 성 3채에 맞먹었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당신이라면 세상 최고의 차통이라 한들 성 3채를 내어주고 얻을 것인가. 그저 놀라운 컬렉터의 세계다.

다시 오차즈케 이야기로. 한국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다. 보리굴비(말린 굴비를 보리가 가득 담긴 보릿독에 넣어 저장한다 해서 보리굴비라는 이름이 붙었다)를 쪄서 한 마리 통으로 내어놓는 보리굴비 한상에는 항상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녹차물이 함께 올라온다. 녹차물에 밥을 말아 녹차물밥을 한숟가락 뜨고 그 위에 보리굴비 한 점을 올려 먹으면 ‘천상의 맛’이 따로 없다. 왜 하필 보리굴비 구이에 녹차물에 만 밥일까. 보리굴비는 별미지만, 굴비자체가 워낙 기름이 많아 비린내가 강한 생선이다. 게다가 말린 굴비는 또 특유의 냄새가 있다. 녹차가 이 비린내를 잡아주고 냄새 또한 잡아준다. ‘최상의 마리아주(mariage:결혼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 단어, 보통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가리킨다)’인 셈이다.

‘일본식 소울푸드 스토리’라고도 불리는 심야식당에도 당연히 오차즈케가 등장한다. ‘시즌 1’ 3화 ‘오차즈케’ 편. ‘오차즈케 시스터즈’라 불리는 3명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각자 매번 매실, 연어, 명란 오차즈케만 찾는 그녀들이 오차즈케를 만드는 중요한 팁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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