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현대사에서 두드러진 변화를 꼽자면 ‘디지털화’와 ‘탈중앙화’다. 모든 영역에서 아날로그는 디지털로 전환하고, 중앙집권 체제는 탈중앙을 좇는다. 차세대 인터넷이라 불리는 ‘블록체인’ 기술도 이런 도도한 현대사의 흐름에 큰 역할을 한다. 디지털화와 탈중앙화를 가속화하고 나아가 ‘온체인화’라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1. 모든 아날로그는 디지털화한다
디지털화 흐름 속 블록체인의 부상
정보공개와 공유는 시공을 초월한 인류의 꿈이었다. 구글 검색 기능이나 정보 동아리 페이스북은 이러한 인류의 꿈에 한발 더 다가가도록 만들었다. 여기 힘을 보탠 게 ‘디지털 기술’이다. 디지털화가 되면서 대량의 데이터를 쉽게 검색·편집·공유할 수 있어 방대한 자료를 모아놓은 도서관 같은 물리적 공간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미래에는 아날로그 형식 자료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기술이 디지털화를 더욱 가속화시켜, 사람들 생활 방식이 한층 디지털 중심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화폐 역시 지폐의 자리를 디지털화폐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2000년대 초 IT 붐이 거세게 일었다가 버블이 꺼지면서 주가가 10분의 1로 폭락했다. 하지만 버블 효과는 있었다. 혼란을 거치면서 옥석이 가려진 IT 발달은 지금의 빅테크 기업 성장으로 이어졌다.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화폐도 IT처럼 혼란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장할 것이다.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와 NFT, 메타버스 기술이 AI와 결합해 큰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한다. 단순 트레이딩 봇이 아닌 ‘AI 에이전트’가 디파이와 메타버스 공간에서 인간의 지시 없이 자율적인 활약도 기대된다.


2. 모든 중앙화는 탈중앙화한다
권력과 화폐, 대기업의 탈중앙화
전통적으로 국가와 사회는 중앙화된 구조를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과거 봉건 군주제는 자산과 정보의 독점적 소유와 선택적 분배를 근간으로 체제를 유지했다. 이에 반발해 일어난 게 ‘시민혁명’이다. 1688년 영국 명예혁명, 1776년 미국 독립혁명,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등 세계 3대 시민혁명의 목표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 쟁취였다.
이는 중앙집중적 권력이 분산화 과정을 거쳐 탈중앙화로 가는 시도로 절대왕정에서 왕의 중앙집중적 권력이 귀족들에게 분산된 뒤 이는 다시 시민혁명을 거쳐 권력의 탈중앙화로 이행되었다. 국가주의가 개인의 자유 신장으로 큰 흐름이 자유주의로 바뀌는 것도 탈중앙화의 시대적 사조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따르면 한 나라의 패권적 기축통화는 필연적으로 무역 전쟁을 일으킨다. 무역 전쟁은 환율 전쟁을 거쳐 패권 전쟁으로 치달으며 그 끝은 물리적 전쟁의 발발이라 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화폐의 탈국가화’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화폐 발행권을 중앙은행이 독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제도가 통화 팽창과 재정 팽창을 유발하고 경기 변동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정부는 시장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고 일절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중앙은행은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높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민간 주체 누구나 화폐를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 나라의 패권 통화는 근원 인플레이션 허용 한도 내에서 통화를 마구 찍어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간 달러 발행은 1000% 이상 급증했다. 이렇게 미국이 촉발한 환율 전쟁으로 인해 경쟁국 통화도 환율 방어를 위해 비슷한 통화 팽창 흐름을 보였다. 무역 전쟁, 통화 팽창, 인플레이션, 금권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세계 화폐’가 필요한 이유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비트코인이 탄생한 이유도 여기 있다. 기존의 금융 시스템은 정부나 은행에 의해 통제돼 유사시에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곤 했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중앙기관 개입 없이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고 송금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이른바 모든 가치 위에 존재하던 국가주의에서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통화도 마찬가지다. 국가주의 위에 성립된 중앙화 통화가 아닌 세계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탈중앙화 세계 화폐가 미래 통화의 모습으로 주목받는다.
오늘날의 중앙화는 대기업, 금융기관 등의 주체들이 자원과 정보를 통제한다. 이는 불평등과 권력 집중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빅테크들이 이에 속한다. 이에 반해 탈중앙화 개념은 권력과 정보와 자원의 분산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자원을 공정하게 이용하거나 분배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탈중앙화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사용자 데이터의 소유권과 콘텐츠 통제권을 사용자에게 돌려주며,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촉진한다. 웹 3.0의 핵심 개념이다.
3. 모든 온라인은 온체인화한다
투명한 거래 기록…실물자산 토큰화
‘온체인화’는 인터넷상 다양한 활동과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운영하는 개념이다. 대부분의 온라인 활동은 중앙화된 서버에서 관리되지만, 온체인 활동은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블록체인에 분산 저장되고 실행된다. 금융 면에서 보면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해 계약과 프로세스가 자동으로 실행된다. 이로써 신뢰할 수 있는 중개인(은행) 없이도 빠르고 저렴한 글로벌 금융거래가 가능해 중개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 온체인화가 발전하면서 디파이, NFT,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온체인 소셜미디어, AI 온체인 데이터 등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블록체인이 차세대 인터넷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정보의 전달뿐 아니라 ‘가치’도 전달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으로 전송되는 디지털자산(코인)이 대표적인 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대표 래리 핑크는 언론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라는 신생 위험 자산이 ETF라는 안전한 방식으로 노출된 것은 금융 기술의 첫 번째 혁명에 도달한 것이며 앞으로 ‘모든 금융자산의 토큰화’가 금융기술의 두 번째 혁명이 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주식과 채권 등 금융자산을 토큰화한 ‘자산 토큰화(RWA·Real World Assets)’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금융, 부동산 등 실물자산은 물론 음원, 지식재산권, 예술 작품 등 모든 자산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자산 토큰화의 온체인 거래는 24시간 거래와 조각 투자가 가능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RWA 시장이 2030년 16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찔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다.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 거대 금융기관이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홍익희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9호 (2025.03.05~2025.03.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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