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슈퍼 개발자들
1년이면 유니콘 만들어
한국도 낭비할 시간없어
개발자들 전면에 나서야
![AI혁명을 이끌고 있는 오픈AI와 중국 AI엔진 딥시크 로고. 인류의 삶을 바꾼 다른 혁명과 달리, AI혁명은 속도도 빠르고 극소수의 개발자들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우려된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502/24/news-p.v1.20250224.f68922c019ca4a7b86515d5b1cbcbbfd_P1.jpg)
한국인이 사랑하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서막을 여는 곡은 ‘대성당들의 시대’이다. 음유시인 그랭구아르가 절대적이었던 종교적 권위가 무너지고 인간들의 새 천년이 열리는 풍경을 노래한다. 대성당들의 시대 이후에는 ‘대항해 시대’가 있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찾아 처음으로 대양을 누비고 세계를 일주하던 때다.
지금은 ‘대엔지니어의 시대’라 할 만 하다. 국내 한 AI연구소 센터장은 “혁신의 체감속도로는 최근 2~3년, 사실상 바로 지금 21세기가 시작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두세 달 전 이 칼럼을 썼다면 ‘대 인공지능(AI)의 시대’라고 썼겠지만, 이제는 안다.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것은 몇 명의 엔지니어들이라는 것을.
실리콘밸리에서 핫한 AI스타트업을 발굴하는 한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지금 세상을 바꾸고 있는 건 100명 남짓 되는 엔지니어들이다. 이들과 협업해 수십 억명의 고객에게 도달하는 서비스를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은 30명도 안될 것”이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역대 산업혁명 시기마다 소수의 선구자들이 있었겠지만, AI 혁명은 더욱 더 극소수가 선도하는 분위기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이 앞다퉈 러브콜을 보내지만, 티타임 약속조차 쉽지 않다. 시간낭비할 겨를이 없어서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AI스타트업은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해 유니콘 대접을 받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는단다. 불과 며칠 사이에 경쟁자들에게 밀릴 수 있는 치열한 경쟁중인 데다, 전세계 투자자와 고객사들이 줄을 서 있으니 여간해선 만나주지 않을 만도 하다. 게다가 대부분 20~30대 자유로운 영혼들, 미친듯이 일하고 엄청난 부(富)를 거머쥐는, 우리 시대의 ‘슈퍼파워’이자 ‘슈퍼차지’ 인생들이다.
AI로 이런 걸 만들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던 제품과 서비스들이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에서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었다. 이런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몇 개만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몇 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서비스가 벌써 나오고 있으니, AI가 모든 기기에 스며들 날이 머지 않았다.
인류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현기증나는 속도전이다. 더 절망적인 것은 AI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초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잠든 사이 앞서간 사람들을 아마도 평생, 어쩌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엔지니어 퍼스트’를 외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엔지니어들을 인터뷰하고 나면 두 가지 생각이 들곤 했다. ‘저 분들의 사고 체계를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정말 멋지다.’ 본인이 흥미로운 데이터를 만지고 싶어하고, 훌륭한 개발자와 일할 기회를 기꺼워하는, 대체 불가능한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나라 엔지니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 우리도 엔지니어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그들과 말이라도 섞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기우이길 바라지만, 소수의 AI 혁명가들이 어긋난 길로 가려할 때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엔지니어들 뿐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과속방지턱에 걸린 듯 덜컹거리는 것은 제때 운전사를 교체하지 않았기 때문일 지 모른다. 지금 당장 차를 세울 수 없다면, 엔지니어들의 목소리라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먹고 살 걱정과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밤, 대엔지니어들의 시대를 기록하고 있자니 주 52시간 찬반 논란이 사치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