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민주당은 원래 진보 정당이 아니고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라며 또 한 번 우클릭하면서 민주당이 시끌시끌했다. 민주당이 진보 정당이 아니라는 발언은 계급론적 기준에서 일견 타당하다. 김대중 이래 민주당의 경제 이념은 독일로 치면 사민당보다는 보수 기민당에 더 가까웠다. 보편복지에 대한 철학도 당대 보수정당에 비해 민주당의 그것이 유별나게 앞서나간 적이 없었다. 튀기 시작한 것은 이재명 대표가 ‘기본소득’과 ‘25만원 쿠폰’을 들고나온 이후였다. 민주당이 그나마 ‘진보스럽게’ 된 원인을 본인이 제공해 놓고 이제 와 ‘우리는 진보정당이 아니어요’ 하는 행태는 퍽 잔망스럽다.
이재명 대표가 자신을 중도보수로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자유다. 다만 ‘나는 원래부터 보수요’ 하는 행태 자체는 오히려 보수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해주고 싶다. 이 대표는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저 사실은 오래전부터 여자로 살아왔어요’ 하면서 여성 화장실 출입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세상에 그런 보수주의자 본 적 있는가.
남성이 여성 화장실을 출입하려면 먼저 성전환 수술을 받고 법원에서 ‘오늘부터 여자’라는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 이 대표는 무슨 수술을 받았는가. 가령 기본소득이나 25만원 상품권은 진보의 ‘성징’ 같은 것인데(기본소득의 우파적 뿌리에 대해 강의할 필요는 없다. 이 대표가 우파적 관점의 기본소득을 주장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걸 그대로 두고 성전환을 주장하면 말이 안 된다. 그 전에 호르몬 주사 처방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와 체형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이 대표는 중도보수의 특징이 성장과 한미일 공조에 있다고 본 듯하다. 그래서 주52시간 예외도 끌고 나오고 25만원도 포기할 것처럼 굴더니 얼마 못 가 둘 다 원점 회귀했다. 주사도 안 맞고 여자 목소리 흉내만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면 한미동맹주의자? 그것과 ‘셰셰’의 차이를 도통 알 수가 없다. 일관된 것은 오로지 경박함뿐이다. 세상에 경박한 보수주의자는 없는 법이다.
지금 이 대표가 하는 커밍아웃은 수술도 안 받고, 주사도 안 맞은 사람이 여성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대표는 논란이 일자 지난 21일 “안보·경제 영역은 보수적 인사들이 보수적 정책으로, 사회·문화 영역은 진보적 인사들이 진보적으로 집행하면 된다”고 했다. 급할 땐 남성 화장실도 가겠다는 말로 들린다. 이런 커밍아웃도 있는가.
이 대표는 보수주의에 대한 선망과 동경을 오래도록 숨겨온 모양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런데 먼 발치서 곁눈질로 본 탓이겠지만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가 왜곡돼 있다. 보수주의는 우파적 정책을 실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생활양식으로서의 보수주의가 몇백 배 더 중요하다. 신중한 말과 행동속에 깃들인 신념, 타협을 부끄러워하지 않되 목적지를 잃어버리지 않는 태도, 그 목적을 위해 보수와 개선을 병진시키는 노력이 에드먼드 버크 이후 200여년에 걸쳐 축적되어온 보수의 생활양식이다. 이런 의미의 보수주의자에는 이승만과 박정희는 물론 김대중도 들어갈 수 있다. 등소평, 심지어 혁명아 모택동도 생활영역에선 보수주의자였다.
이 대표가 중도확장을 바란다면 입에 발린 우클릭 발언을 남발하는 대신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왜 중도는 이재명을 불안해하는가. 급진적이라서가 아니라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인격적으로 불안하다는 것이다. 먼저 점잖아져야 한다. 그것이 이 대표가 선망했을 보수의 참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