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오랜 기간 ‘사기’로 치부돼왔던 암호화폐(코인) 시장은 최근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New Era)’를 맞이하고 있다. 시장을 둘러싼 변화가 워낙 많지만 크게는 3가지로 가닥을 잡아볼 수 있다. 첫째 적대적 규제에서 친암호화폐 정책으로 전환, 둘째 개인 주도 시장에서 기관 주도 시장으로 변화, 셋째 비트코인이 기업의 재무 전략 투자자산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 적대적 규제에서 친암호화폐로
친코인이 과반 차지한 미국 상·하원
그간 코인 최대의 적은 미국 규제였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대표적이다.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는 코인을 달러에 대한 위협적 존재로 인식했다. 애초에 싹을 잘라내야 하는 대상이었다.
‘최초의 코인’ 비트코인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한 코인 ‘리플’이 당장 규제에 맞닥뜨렸다. 송금 능력이 탁월한 리플은 은행의 느려터진 송금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탄생된 ‘중앙화’ 코인이다. ‘싸고 빠르고 송금 사실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하지만 너무 탁월한 송금 능력이 되레 문제가 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결제 시스템 스위프트(SWIFT)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리플 활동을 방치할 경우 스위프트 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안보 이유도 있다. 스위프트 시스템은 그간 오랜 기간에 걸쳐 테러 자금 등 불법 자금을 걸러낼 수 있는 메시지 검열 시스템을 갖고 있어 미국 안보에 크게 기여해왔다. 그런데 전자지갑에서 전자지갑으로 바로 전송되는 코인은 불법 자금을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최근에는 태세가 전환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변화만 봐도 그렇다. 트럼프 역시 과거에는 “비트코인은 사기다. 달러에 위협을 가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태도를 돌변해 “미국을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당선된 친코인 성향 의원 수가 반대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도 ‘친코인 양원’이 탄생했다. 앞으로는 과거와 달리 규제보다는 지원과 보호 위주의 코인 법안이 제정될 공산이 커졌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 내 코인 생태계가 급격히 커진 덕분이다. 시장조사 업체 모닝컨설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3년 4월 기준 미국 국민 22%가 코인 투자를 하고 있다. 숫자로는 약 7400만명으로 미국 유권자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이제는 이들의 표심을 잡지 못하면 당선되기 힘든 시대가 됐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주체는 정치가들이 아닌 바로 투자자들이었다.

2. ‘개인 주도’에서 ‘기관 주도’ 시장으로
비트코인 ETF 등장 이후 운용사 투자 봇물
과거에 기관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금, 회계, 보관’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이를 일거에 해결해준 게 2024년 초 승인된 ‘비트코인 현물 ETF’다. 이로써 전통 금융과 코인 사이 거대한 융합이 시작되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대표 래리 핑크는 이를 두고 방송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서 디지털자산이란 신생 위험 자산군이 ETF란 안전한 방식으로 노출됐다”며 “이는 금융 시장 기술 혁명 첫 번째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다음 단계는 모든 금융자산의 토큰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1분기에만 944개 기관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 현물 ETF를 담기 시작했다. 숫자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에 1억달러 이상 돈을 굴리는 자산운용사 수는 7000개가 넘는다. 전체 13% 정도만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한 셈이다. 그나마 대형 금융기관들은 아직 입질을 시작하지 않았다.
데이터 분석 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 보고서에 따르면, 기관 투자자 활동 증가로 미국이 세계 최대 코인 투자 시장이 됐다.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미국은 1조3000억달러 규모 거래를 기록했다. 전 세계 거래액 22.5% 수준이다.
기관 투자자에게는 2대 투자 원칙이 있다. 하나는 ‘거시경제 흐름에 맞서지 마라’. 또 다른 하나는 ‘정부 정책에 맞서지 않는다’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 정부의 정책이 ‘친코인’으로 선회했다. 거시경제 흐름만 나쁘지 않다면, 기관 투자자 봇물이 터질 모양새다.
이제는 국가 단위 비트코인 매집 경쟁까지 예상된다. 여기에 트럼프가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비축하겠다고 나서자 15개 주 정부도 비트코인 비축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포브스는 미국이 비트코인 비축을 시작하게 되면 올해 안으로 G7 또는 브릭스 국가 중에서도 이를 채택할 나라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에서 열린 1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는 탈달러화를 위해 브릭스 회원국 간의 무역에 비트코인을 무역통화로 쓰자는 논의가 있었다.

3. 기업 전략자산으로 각광받는 비트코인
빅테크로 옮겨붙은 비트코인 투자 수요
요즘 미국 주식 시장에서 가장 핫한 종목 중 하나가 마이크로스트래티지(MSTR)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재무 전략의 일환으로 비트코인을 사 모으기 시작한 2020년 8월 이래, 4년 2개월간 동사 주가 상승률은 1620%에 달한다. 엔비디아 등 기술주와 비교해도 높은 상승률이다. 같은 기간 비트코인 상승률보다도 3.6배 더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채굴주 등 다른 비트코인 관련 주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전략을 따라하고 있는 일본의 메타플래닛 주가는 최근 6개월간 1200%나 상승했다.
기업의 비트코인 재무 전략 투자 움직임은 이제 빅테크로 옮겨붙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난 12월 주주총회에서 사내유보 자금 760억달러 중 일부를 비트코인에 투자하자는 안건이 표결에 부쳐졌다. 회사 측의 반대 종용으로 가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투자 움직임이 확산 중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마존 등 다른 회사들도 재무 전략의 일환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하자는 일부 주주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디지털자산 공정가치를 인정하는 새로운 재무회계 기준이 미국에서 시행됐다. 과거에는 디지털자산을 위험자산으로 분류, 손실분에 대해서는 상각처리하도록 했으나 이익은 장부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공정가치 곧 측정일 당시 시세를 반영할 수 있게 됐다. 기업 재무 전략 일환으로 취득한 코인에 대한 평가 기준이 명확해진 셈이다. 앞으로 기업 주가 부양책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간 대표적인 방법은 자사주 소각이었다. 얼마 전 삼성전자가 주가 부양을 위해 10조원을 들여 자사주를 사들여 이를 소각했다. 그러나 주가 부양 효과는 이틀에 그쳤다. 앞으로는 기업들이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불태워 없애는 것보다는 그 돈으로 비트코인 매입을 택하게 될 것이다. 주가 부양 효과도 뛰어날 뿐 아니라 실제 회사 보유 자산도 비트코인 상승률만큼 큰 폭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홍익희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7호 (2025.02.19~2025.02.25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