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 김감불과 장례원 종 김검동이, 납으로 은을 불리어 바치며 아뢰기를, “납 한 근으로 은 두 돈을 불릴 수 있는데, 납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니, 은을 넉넉히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리는 법은 무쇠 화로나 냄비 안에 매운재를 둘러놓고 납을 조각조각 끊어서 그 안에 채운 다음 깨어진 질그릇으로 사방을 덮고, 숯을 위아래로 피워 녹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시험해보라.” 하였다.
# 유서종은 잘못이 많으니 죽는 것을 헤아리지 말고 실정을 얻을 때까지 형신하라. 다만 왜인과 서로 통하여 연철을 많이 사다가 불려서 은을 만들고 왜인에게 그 방법을 전습한 일은 대간이 아뢴 대로 국문하라.
1503년 김감불과 김검동이 납이 포함된 은광석에서 은을 추출해내는 기술을 연산군 앞에서 시연합니다. 당시 은은 매우 귀한 금속이었습니다. 다른 금속과 섞여 있는 광석에서 은만 뽑아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납이 섞인 은광석에서 납과 은의 녹는점 차이를 이용해 녹는점이 낮은 납을 먼저 녹아내리게 한 후 은만 남기는 방식으로 순도 높은 은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연산군이 두 사람을 불러 시연을 명했고 매우 획기적인 기술이라 칭찬하며 은 생산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조선의 앞선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한 단면 ‘연은분리법’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조선을 부강한 국가로 만들 수도 있었던 연은분리법은 얼마 못 가 자취를 감춥니다. 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중종이 연산군 시절 사치 풍조를 없앤다며 은광석 채굴을 금지시켰기 때문이죠. 1507년에는 아예 연은분리법도 금지합니다. 그렇게 조선에서 쇠퇴한 은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부흥합니다. 1539년 8월 10일 중종실록에 따르면 “유서종이 일본 상인을 집으로 불러 연은분리법을 전수했으므로 국문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게 얻은 연은분리법을 활용해 일본은 은 산업을 적극 육성합니다. 일본은 막대한 은을 기반으로 포르투갈과 교역하면서 상업을 발전시키고 화승총도 대거 구입합니다. 그리고 1592년 그 화승총을 앞세워 임진왜란을 일으켰죠.
연은분리법 스토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결정으로 인해 부국으로 올라설 기회를 놓치고 그로 인해 외세 침탈까지 겪어야 했던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트럼프 시대 2기가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공언해온 대로 보편관세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산 세탁기에 50%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면 오하이오에 있는 회사(미국 가전회사)들이 모두 망했을 것(트럼프 대통령)” “한국, 일본 등 동맹들이 우리의 선량함을 이용해왔다(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 등 한국을 ‘콕’ 집어 저격하는 모양새에 재계가 들썩입니다. 이 와중에 중국 딥시크발 AI 쇼크로 이중삼중의 충격파에 마주했습니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대응은커녕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절박한 시점에 반도체특별법·첨단에너지3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고 AI나 양자컴퓨터는 온통 남의 나라 말 같으니 말이죠.
[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5호 (2025.02.05~2025.02.1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