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부추기는 극단정치가
법원에 남긴 참혹한 흔적
부정선거 망상부터 접고
尹·與·野 모두 반성해야
법원에 남긴 참혹한 흔적
부정선거 망상부터 접고
尹·與·野 모두 반성해야

그의 가족은 그리스인들이 독재정권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던 1974년 아테네에 있었다. 그리스인이던 그의 어머니는 그와 동생을 데리고 시위 현장에 나갔다. 시위대는 반미 구호도 외쳤다. 미국이 독재정권을 지지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반미 구호가 점점 확산될 때 갑자기 어머니가 그와 동생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여기 미국인들이 있어요!" 그 순간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자기 아이들을 죽이는 신화 속 마녀 메데이아가 떠올랐다고 했다. 도대체 그의 어머니는 왜 그랬을까. 폭발 직전의 군중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알린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의 어머니가 '집단의 광기'에 휩쓸렸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인간은 집단 안에서 흥분 상태에 빠지면 자신이 누구인지 잊는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도덕까지 내버린다. 혼자라면 절대 못 할 일을 하게 된다. 크리스타키스 교수의 어머니처럼 아들을 위험에 밀어 넣기도 하고, 서부지법에서처럼 떼로 몰려들어 법원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나 집단이 늘 광기에 휩싸이는 건 아니다. 탄핵 국면에서도 시위를 축제처럼 한 경험이 우리에겐 있다. 도덕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그날 서부지법 앞에서는 왜 집단이 광기에 빠져든 것일까.
문득 프란치스코 교황의 '와인 vs 그라파 비유'가 떠오른다. 와인에는 향과 풍미, 색, 알코올까지 다양한 것들이 들어 있다고 했다. 우리 인간성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열정과 호기심, 이성, 이기심 등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와인을 증류해 만든 그라파는 알코올 하나뿐이라고 했다. 교황은 시장이 우리 인간성을 증류해 이기심만 남은 그라파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의 말에서 시장을 '정치'로, 이기심을 '증오'로 바꾼다면 지금 한국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한국의 정치는 우리 인간성에서 상호 이해와 관용을 증류해 증오만을 남기고 있다. 그 증오가 폭발한 것이 서부지법 테러다.
발단은 극단적 정치세력, 특히 유튜버들이었다. 그들은 정치적 반대편을 악마화했다. 그 악마에 대한 분노를 사람들에게 심었다. 극우 세력의 '부정선거' 망상은 특히나 문제다. 상대가 부정하게 선거에서 이겼다면 용납할 수 없다. 폭력까지도 정당화하게 된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그 망상을 윤석열 대통령이 믿었다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대를 보내더니, 계속해서 그 망상을 주장한다. 그의 지지자들은 계속 같은 말을 들으면서 근거가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대통령이 하는 말이니까 더욱 그럴 거 같다. 종국에는 그가 옳고 정의라고 믿게 된다. 그런데 이제 그가 구속됐으니 분노를 참을 수 없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이 부정선거를 저지른 악마와 한편이 됐다고 믿게 된다. 법원을 테러할 정도로 광기에 휩싸이고 만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반성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올라 치면 사법부를 맹비난했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법원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폄훼했다. 그들 역시 법원을 악마와 같은 편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계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여러분이 할 일은 그라파를 다시 와인으로 돌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도 똑같은 과제를 맞았다. 증오만이 남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선거에서 상대편을 악마화하는 후보는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
[김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