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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경험의 축적’이 웬만한 천재보다 낫다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 
2025-01-11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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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장평대전과 경험의 중요성
장평대전은 ‘경험 축적’을 하지 못한 젊은 장수의 한계를 면밀히 드러낸 전투였다. (헤리티지 옥션 제공)
장평대전은 ‘경험 축적’을 하지 못한 젊은 장수의 한계를 면밀히 드러낸 전투였다. (헤리티지 옥션 제공)

때는 전국시대였다.

진시황제의 증조할아버지인 소양왕이 다스리던 진나라가 다른 6개국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진나라가 이웃의 조(趙)나라를 침공한다.

하지만 진나라의 첫 조나라 공격은 실패한다. 조나라에는 조사(趙奢)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사는 겁을 먹은 척 두 달 가까이 방어만 했고 이에 진나라 군대가 안심하고 방어를 허술히 한 틈을 타서 기습해 큰 승리를 거뒀다.

그런데 조사 장군이 사망하고 다시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입했는데 이것이 바로 장평대전(長平大戰)이다.

이 장평대전에서 조나라 군대 총사령관은 과거 진나라를 상대로 큰 승전을 거둔 조사 장군의 아들인 젊은 장수 조괄(趙括)이었다.

조괄은 아주 총명한 젊은이였다고 한다. 아버지인 조사와 병법을 논하면 오히려 아버지가 조괄에게 질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조사는 조괄이 잘한다고 칭찬해주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묻자 조사가 말하기를, “전쟁이란 사람이 죽는 곳이오. 그러나 내 아들인 괄은 이를 너무 쉽게 말하고 있소. 만약 그를 장수로 삼는다면 조나라의 군대는 무너질 것이오”라고 했다.

또한 당시 조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인상여도 조나라 왕에게 간언하기를, “왕께서 명성만으로 조괄을 쓰려고 하시는데, 이는 아교로 슬(瑟·거문고)의 발을 붙이고 슬을 연주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그저 그 부친이 전한 책만 읽었을 뿐 임기응변을 모릅니다”라고 했다.

이 일화에서 교주고슬(膠柱鼓瑟)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교주(膠柱)’는 아교로 기러기발을 붙인다는 뜻이고, ‘고슬(鼓瑟)’은 거문고를 탄다는 뜻이다. 보통 연주자들이 거문고를 탈 때 줄을 팽팽하게 고정하는 기러기발이라는 부품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소리를 조율한 후 연주를 하는데 교슬이라는 말은 사전에 최적의 음색을 내는 위치를 미리 찾아서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서 고정한 후 다시는 위치를 조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만일 천년만년 최적의 음색을 내는 장소가 있다면 고정시키는 것이 맞겠지만 매일 온도와 습도에 따라 최적의 장소가 바뀐다면 아교로 기러기발을 고정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상여는 책으로만 전쟁을 공부한 조괄은 현실의 전투에서 필요한 임기응변의 재주가 없으니 처음에 계획한 대로 밀고 나가다 오히려 크게 패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조괄이 조나라 총사령관에 임명되자 진나라 군은 적은 수의 군사로 조나라 군대를 공격하다가 도망쳤다. 이를 본 조괄이 대군을 거느리고 진나라 군사를 쫓아왔다 진나라 매복에 걸려서 포위됐다. 진나라 군대는 조나라 군대 보급로를 끊고 포위했는데 이런 상황이 46일간 지속됐다. 결국 식량이 떨어진 조나라 군대는 이판사판의 기분으로 진나라 군대 방어망을 뚫고 도망하려다 오히려 총사령관인 조괄은 전사하고 조나라 40만 대군이 모두 포로로 잡혔다. 역사에 따르면 진나라는 40만 조나라 군사를 모두 죽였다고 하니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나라의 모든 젊은 남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셈이다.

장평대전에서 패배한 조나라는 다시는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소양왕의 증손자인 진시황제에게 패해 식민지로 전락한다.

여기서 천재성과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나 프랑스 나폴레옹은 불과 20대 초반 나이에 군대 총사령관이 돼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공을 세웠다. 동양에서도 당나라 이세민은 20세 나이에 군사를 일으켜 중국의 모든 곳을 누비면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전승을 거둬 당나라를 건국했다. 마치 음악가로 치면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성을 군사 분야에서 발휘한 인물들이다.

따라서 군사 분야에도 경험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천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괄 장군 같은 20대 군인이 아무리 천재성을 보이더라도 그에게 총사령관직을 맡기는 것은 확률적으로 옳지 않다. 물론 그 천재적인 젊은 군인이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인물이라면 너무 좋은 기회를 놓치는 셈이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경험이 없는 장군은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는 책에도 나오지 않고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황당한 일이 가득하다.

경제학은 항상 인센티브를 줘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신상필벌(信賞必罰)과 같은 의미인데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한다는 간단한 원리를 적용하면 사람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는 말이다. 정말일까?

미국의 어떤 경찰서장이 범인 체포율을 올리면 안전한 지역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범인을 많이 체포한 순서대로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범인 체포율을 엄청나게 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범인이 많이 체포되는데도 불구하고 지역 사회 살인 사건이 크게 증가하는 바람에 이 제도는 얼마 가지 못하고 폐지됐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경찰들이 체포율을 높이기 가장 쉬운 분야가 교통 관련 경범죄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이나 자동차 정비 불량 같은 가벼운 위반을 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체포를 늘린 것이다. 살인범 한 명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열흘이 걸릴 수도 있는데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명을 쉽게 체포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들이 살인 사건은 놔두고 모두 경범죄 단속에만 나섰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감리교 종단이 교인을 늘리기 위해서 각 교회 목사들에게 교인 수에 비례해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냥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만 받을 것이 아니라 목사들이 적극적으로 포교 활동을 해서 감리교회 교인을 늘리려는 노력이었으니 이 또한 제대로 된 인센티브 제도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시행해본 결과 감리교 종단의 돈은 많이 지불됐지만 어쩐 일인지 오클라호마 감리교 신자 숫자는 늘지 않았다.

답은 목사들이 어디서 신자들을 끌어왔는지를 생각해보면 나온다. A마을 감리교회 목사가 A마을 장로교 신자를 감리교로 개종시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또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아주 쉬운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이웃 B마을 감리교회 신자를 A마을 감리교회로 끌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새로운 감리교 신자를 설득하기보다는 다른 마을 감리교 신자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교회로 데리고 와서 인센티브를 많이 받았다. 결과적으로 종단으로서는 돈을 지불했지만 오클라호마 전체의 감리교 신자는 늘어나지 않았다.

게임이론 문제를 풀 때 이미 정해진 전략과 전술을 우리가 미리 모두 알고 있다는 가정 아래 계산을 한다. 가위바위보를 하면 상대가 낼 수 있는 전략은 가위와 바위와 보, 이렇게 세 가지 외에는 없다고 가정하고 분석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현실에서 상대방이 보를 내고 내가 가위를 내서 내가 이겼는데 상대방이 자기가 사실 바위를 냈다고 우긴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큰돈이 걸린 가위바위보 게임이라면 보를 내고도 자기가 바위를 냈다고 우기는 상대방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게임이론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전략이다.

이 세상의 그 많은 돌발상황을 모두 혼자서 생각하는 것은 웬만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도 쉽지 않다. 반드시 경험의 축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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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2호 (2025.01.08~2025.01.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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