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서 참패한 日 자민당
야당에 한 발짝씩 양보하며
민생 등 주요정책 통과시켜
소통이 아예 사라진 韓국회
편가르기 하다 정책은 실종
이제라도 국민 위해 일해야
야당에 한 발짝씩 양보하며
민생 등 주요정책 통과시켜
소통이 아예 사라진 韓국회
편가르기 하다 정책은 실종
이제라도 국민 위해 일해야

지난 17일 일본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고 난 뒤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기자들에게 답한 소감이다. 자국에서 매일 죽일 듯이 싸우는 여야 모습만 보아 온 기자에게는 생경한 광경이었다.
지난 10월 치러진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이시바 내각은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한국과 비슷한 '여소야대' 정국이 된 것이다. 일본 집권 자민당이 여소야대가 된 것은 26년 만이다.
콧대 높았던 자민당이었지만 이번에 여소야대로 바뀌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당장 급한 것은 추경이었다. 한국 못지않게 일본도 물가가 크게 올라 어려움을 겪는 국민이 많다. 지난 1월 규모 7.6 강진이 발생한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의 경우 아직도 피해 복구가 더디다.
민생 현안이다 보니 정부도 급했다. 자민당은 국민민주당, 일본유신회 등 협력이 가능한 야당과 여러 차례 만나며 이견을 조율했다. 이들의 무리한 요구를 전부 받아들이기보다 서로 맞춰갈 수 있는 교차점을 찾아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소득세 부과 기준을 높이는 '103만엔의 벽' 문제는 야당이 주장한 178만엔을 협상을 통해 123만엔으로 낮췄다. 소득세 과세 구간을 높여 세수가 줄어들게 됐지만 정부는 세출 구조조정을 철저히 하기로 다짐했다. 일각에서 여당이 너무 양보했다고 할 정도였지만 작은 것을 주고 민생에 급한 추경 통과라는 대마를 잡았다는 시각도 크다.
추경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 중 하나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 지원에 우리 돈으로 12조원이 편성됐다는 것이다. 국가 미래를 위해 착실한 투자 기반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여소야대 정국 이후 제대로 된 정책 한 번 시행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여당은 불통으로 일관했다. 야당을 정책 파트너가 아닌 발목을 잡는 걸림돌로만 본 결과다.
거대 야당도 할 말은 없어 보인다. '내 편'에 환영받는 정책은 밀어붙이고, 그렇지 않은 정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별다른 이견도 없으면서 반도체 특별법 같은 우리 산업의 운명을 결정지을 법안마저 무시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정책은 '내 편'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왕국' 인텔의 몰락, 미래차 개발에 뒤처졌던 폭스바겐과 닛산의 위기 등을 볼 때면 우리 산업의 미래도 자신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일당 독재에 가까운 자민당, 할아버지·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세습정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정경유착 등을 보면서 그동안 일본 정치를 후진적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민생은 안중에도 없고 정권 다툼에만 혈안이 된 한국 정치를 보다 보면 일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내 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이승훈 도쿄 특파원 thoth@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