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정책, K스타트업 美 진출에 걸림돌”
2019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설립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기업 A사는 202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본사를 옮겼다. 투자 유치와 인재 확보를 제대로 하려면 미국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현재 투자자들은 경기가 어렵다며 지갑을 닫았고, 2023년 10억원을 투자받은 이후 더 이상 유치하지 못했다. A사 대표는 “1년 만에 매출이 반토막이 났고, 30명 넘던 직원은 10명으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글로벌 혁신 스타트업에 전 세계의 돈이 몰리고 있지만, 정작 ‘창업천국’인 미국에 있는 한국 스타트업들은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는 곳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글로벌 투자 분석 플랫폼 피치북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스타트업들의 투자 유치액은 4620억 달러였고 2023년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2940억달러로 주춤했지만, 지난해에는 AI 스타트업 등에 돈이 몰리며 3370억달러로 반등했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상황은 다르다. 벤처투자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국 스타트업 131곳의 투자 유치액은 2022년 8109억원(212건)에서 2023년 4351억원(94건), 지난해 3815억원(94건)으로 급감했다.
특히 2016~2020년 설립된 미국 소재 한국 스타트업 63곳 중 80%가 넘는 51곳이 2023년 이후로는 투자를 한 푼도 못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본사를 둔 한국 스타트업 중에는 더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본사를 옮긴 ‘플립’ 스타트업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투자 업계에서는 ‘플립 무용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 현지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미국에 가서 성공한 스토리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스타트업 대표들의 눈이 너무 높아졌다”며 “아무래도 외국인이 설립한 회사다보니 현지 투자자들은 신뢰도나 혁신성에 의문을 갖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국내 스타트업의 미국 플립을 지원해온 법무법인 미션의 김성훈 대표변호사는 “그동안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법률 자문을 많이 해왔는데, 미국 진출 스타트업들은 비싼 인건비에 대해 항상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무조건 한국보다 투자 유치와 인재 영입이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히려 국내로 역(逆)플립을 하는 스타트업도 나오고 있다. 2014년 설립된 휴이노는 AI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인데,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복귀했다. 다행히 휴이노는 한국 복귀 후 국내 의료기관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사업 기반을 강화했고, AI 기반 심전도 분석 기술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미국 진출 장벽이 더욱 높아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예고한 보복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가 국내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오바마 정부가 도입했던 ‘스타트업 비자’를 없앤 바 있다. 스타트업 비자는 미국 창업을 독려하기 위해 외국인 창업자의 일시 체류를 허용하는 제도로 창업자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최대 5년 간 미국에 체류하며 사업할 수 있도록 했지만, 트럼프 정부는 “실행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며 전격 폐지했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결국 불경기나 외부 리스크에 영향을 받지 않는 혁신적인 기술을 갖추는 것이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