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최악의 위기를 지나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는 당초 이달 중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자체 컨설팅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었다. 정부도 이 결과를 토대로 올해 상반기 안에 산업 지원 후속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기 대선이 6월 3일로 확정되면서 향후 두 달여간 행정부 리더십 부재가 불가피한 상황에 처했다. 이에 따라 컨설팅 보고서 제출과 후속 대책 발표 시점 역시 6~7월 이후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시장 수요 감소와 중국발 플라스틱 과잉 공급의 이중고가 장기화하면서 석유화학 업계에서 산업 위기 공포가 크게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초가 급한 상황에서 산업 재편 방향성을 주도해야 할 정부 역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당초 업계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가 6월 말까지 후속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면서 "방안 마련 시점이 6월을 넘어가면 내각 구성, 장관 청문회 등 변수가 많아져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현 정부 때 발표할 것이냐, 차기 정부 때 발표할 것이냐를 두고 업계에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현장 목소리도 절박하다. 울산·여수·대산 등 석유화학 산업 밀집 지역에서는 설비투자를 보류한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한 중견 석유화학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방향성을 잡아주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를 단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여파로 25%의 관세율 폭탄을 맞게 된 배터리 산업도 정치 일정에 발목이 잡혔다. 최근 국회에서는 투자세액공제, 생산세액공제, 생산보조금과 같이 배터리 업계를 지원하는 각종 입법안이 발의됐다. 이는 전기차 수요 급감으로 직격탄을 맞은 배터리 업계를 살리기 위한 대표적인 입법 지원이다. 하지만 국회 역시 대선 체제로 재편되면서 사실상 입법보다 선거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여야 합치가 필요한 입법안 통과가 상당 기간 지연이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하면서 산업별 불균형을 회복하는 속도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유와 석유화학은 이미 대외 환경 악화로 고전하고 있으며 배터리 업계 역시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과 수출 감소 등 복합적 위기에 놓여 있는 만큼 정치와 무관한 장기적 정책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산업 정책이 정치의 하위 개념이 돼선 안 된다"며 "긴급 지원이 필요한 산업군은 정치 일정과 무관하게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동훈 기자 / 한재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