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 경제에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드리우고 있다. 무차별 관세 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성장률 전망치가 잇따라 낮아지는 모습이다. 세계 경제가 ‘시계 제로’에 빠지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美 관세 정책에 소매판매 부진
1분기 역성장 전망도
미국 증시는 최근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는 중이다. 뉴욕 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3월 10일 하루 만에 2.7% 급락했다. 올 들어 최대 낙폭이다. 이에 따라 S&P500지수는 2월 19일 사상 최고치 대비 8.6% 후퇴한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이 기간 지수 편입 종목들의 시가총액은 4조달러나 증발했다. 같은 날 기술주 중심 나스닥종합지수도 4% 폭락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1만8000선이 무너지면서 2022년 9월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미국 증시는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미국 소비 심리도 심상찮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월 소매판매가 계절 조정 기준 전월 대비 0.2% 증가한 7227억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추정치(전월 대비 0.6% 증가)를 크게 밑돌았다. 앞서 1월 소매판매도 전월 대비 1.25% 감소하면서 2021년 7월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보이기도 했다.
소매판매는 미국 경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소비 지출 현황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다. 시장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우려에 미국 소비자가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미국이 3월부터 본격적으로 다른 나라에 관세를 부과하는 만큼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높아질 것이란 우려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품에 높은 세율의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하면 물가는 더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한 축인 정부 지출마저 크게 줄일 것으로 보여 경제 둔화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정부효율부(DOGE·도지) 수장으로 임명하고 강력한 정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미국 공무원 숫자를 줄이고 방만했던 정부 예산을 감축하는 식이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인플레이션 우려뿐만 아니라 일자리, 소득 감소에 대한 걱정을 키워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전례 없는 공무원 감원도 소비 지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용 상황도 좋지 않다. 2월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15만1000명 증가했다. 1월(12만5000명)보다 증가폭이 확대됐지만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7만1000명)에 한참 못 미쳤다.
이 여파로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갈수록 낮아지는 모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발표한 ‘중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미국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2.2%, 내년에는 1.6%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추산했다. 3개월 전 전망치 대비 각각 0.2%포인트, 0.5%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친 2020년(-2.2%) 이후 매년 2.5% 넘는 성장률을 보였는데, 내년에는 1%대 저성장에 직면하는 셈이다. 골드만삭스도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JP모건체이스는 올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을 30%에서 40%로 높였다.
심지어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실시간 경제성장률 예측 모델 ‘GDP 나우(NOW)’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2.1%로 역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GDP 성장률이 2.3%를 기록했는데 이보다 한참 둔화한 것이다.
‘R의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은 강경하다. 그는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관세 부과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경기나 증시가 침체하더라도 관세 부과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시장에서는 미국이 당분간 고관세 정책을 철회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관세가 결국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한 ‘협상용’ 카드인 만큼 글로벌 기업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는 등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때까진 관세 위협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고물가 속 경기 침체를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미국 경제 침체 공포가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당분간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은 지난 3월 19일(현지 시간)에도 기준금리를 4.25~4.5%로 동결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했다”며 “인플레이션도 다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연준이 트럼프 관세 전쟁뿐 아니라 연방정부 예산 삭감, 금융 시장 혼란 등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경제 전망도 불안
OECD 올해 성장률 전망치 2.1→1.5%
달러화 가치가 요동치고 미국 경제 전망이 불안해지면서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관세 전쟁 우려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당폭 깎았다는 분석이다.
우리 경제는 금융, 실물 부문 모두 불안한 모습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1월 산업생산과 소매판매, 투자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2.7% 감소하며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던 2020년 2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자영업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음식점 포함 소매판매액지수도 1월 기준 전월 대비 5.9% 하락했다. 여기에 중견 건설사가 잇달아 기업회생 절차를 밟으며 ‘건설업 4월 위기설’이 확산되는 것도 불안한 대목이다. 한국 경제 버팀목이었던 수출마저 위축될 경우 경기는 더욱 가파르게 하강할 것으로 우려된다.
글로벌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스스로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OECD는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규제를 제거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 기술을 각 부문에 빠르게 도입해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2호 (2025.03.26~2025.04.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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