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넘게 계속돼온 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 어피니티컨소시엄 사이 ‘풋옵션’ 분쟁이 새 국면을 맞이했다. 국제 중재 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ICC)가 최근 2차 중재 재판 결론을 내놓으면서다. 풋옵션이란 투자자가 매수한 지분을 장래 일정 가격에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어피니티가 풋옵션 행사를 주장했지만 신 회장이 이를 거부하며 2018년부터 갈등을 빚어왔다.
이번 판결에서 ICC는 신 회장이 아닌 어피니티 측 손을 들어줬다. ICC는 ‘신 회장이 30일 내에 외부 기관으로부터 풋옵션 행사를 위한 공정 시장 가격을 재산정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신 회장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풋옵션 행사 시, 그가 되사야 할 지분 평가액은 1조원이 넘을 수 있다고 추산된다. 행여나 매입 대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12년 전 시작된 ‘악연’…무슨 일이?
IPO 불발로 풋옵션…교보 “가격 납득 못해”
최근 ICC는 ‘풋옵션 가격 산정을 강제해달라’는 어피니티 측 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ICC는 신 회장이 30일 내 외부 자문기관을 선정해 풋옵션 가격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이를 어기면 하루 20만달러, 한화로 약 2억9000만원에 달하는 간접 강제금을 부과하도록 결정했다. 신 회장은 1월 중순까지 풋옵션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사이 악연의 시작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피니티는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하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약 24%를 주당 가격 24만5000원, 총 1조2054억원에 인수했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사모펀드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9.05%)와 IMM프라이빗에쿼티(5.23%), EQT파트너스(옛 베어링, 5.23%), 싱가포르투자청(4.5%) 등으로 구성돼 있다.
주주 간 계약에는 ‘풋옵션’이 포함돼 있었다. 교보생명이 3년 내 기업공개(IPO)에 나서면 FI가 투자금을 회수하고, IPO가 불발될 경우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한다는 조건이다. 하지만 교보생명 IPO가 계속 미뤄지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약속 기한인 2015년 9월을 훌쩍 넘긴 2018년 10월, 어피니티 측은 풋옵션 행사를 요구했다.
당시 어피니티는 보유 주식 총 492만주를 주당 40만9912원에 매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신 회장 측은 어피니티가 제시한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며 풋옵션 행사를 거부했다. 신 회장 측이 판단한 적정 주당 가격은 20만원 내외로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신 회장이 ‘풋옵션 행사는 무효’라고 주장하는 등 양측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어피니티 측은 2019년 ICC에 국제 중재를 신청했다.
2021년 9월, ICC에서 1차 중재 판정을 내놨다. 이때는 ‘신 회장이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가 많았다. 재판부는 어피니티 측이 행사한 풋옵션이 ‘유효’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산정한 가격으로 신 회장이 주식을 매수할 ‘의무는 없다’고 판정했다. 풋옵션 가격 산정 ‘방법’에 대한 내용이 계약에 없었다는 점이 근거였다. 어피니티 측은 풋옵션 행사 가격 결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2차 중재를 제기했고, 최근 그 판결이 나온 것이다.
ICC 중재와는 별개로, 국내 소송전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2020년에는 교보생명이 어피니티 측 풋옵션 행사 가격을 산출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딜로이트안진이 교보생명 풋옵션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어피니티 측 부정 청탁을 받고 허위 보고를 했다는 주장을 폈다. 어피니티 측도 공범으로 함께 재판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풋옵션 분쟁, 어떻게 마무리될까
‘행사 가격’과 ‘자금 조달 수단’이 관건
이번 ICC 중재로 신 회장과 어피니티 측 풋옵션 분쟁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ICC가 신 회장 측에 준 30일 기한을 어길 경우 하루 20만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하는 만큼, 가격 재산정이 지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단 재산정이 이뤄지면 이후 단계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신 회장과 어피니티 양측 모두 내다보고 있다.
이제 공은 신 회장에게 넘어왔다. 그가 재산정한 가격과 어피니티가 제시한 가격 차이가 10% 이상 벌어지면 제3의 평가기관을 선정해야 한다. 어피니티가 세 곳을 제시하고 신 의장이 그중 한 곳을 선택하면, 해당 기관이 최종 가치를 측정하는 식이다. 양측이 제시한 가격 차이가 10% 이내일 경우 둘의 평균 가격으로 정해지는데,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서 추정하는 주당 가격과 어피니티 제시 가격(약 41만원) 간극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풋옵션 가격 산정액이 많아도 20만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본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다른 생명보험사 주가순자산비율(PBR)에 비춰 교보생명 주가를 추정해볼 수 있다. PBR은 기업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4개 상장 생보사 평균 PBR은 약 0.3배(시가총액은 2024년 12월 26일, 순자산은 2023년 말 기준)다. 여기에 교보생명 2023년 말 순자산을 곱하면 시가총액은 약 3조2759억원 수준이다. 2019년 단행한 5분의 1 액면분할 이전으로 되돌리면 주당 가격은 16만원이 채 안 된다. 2023년 8월 교보생명이 우리사주조합과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자사주 2%를 매입할 당시 주당 가격(19만8000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양측이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ICC가 정한 30일 기간 내 가격 재산정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현재 시장에서 평가받는 보험사 기업가치를 고려하면 재산정될 풋옵션 가격 역시 어피니티 측이 제시한 가격과 차이가 꽤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어떤 가격으로 정해지든 신 회장이 어피니티 측 풋옵션 행사를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제 시장에서는 신 회장 자금 조달 방법이 주된 관심사다. 신 회장 측이 기대하는 20만원 안팎 가격으로 재산정되더라도 약 1조원 규모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 신 회장이 마지노선으로 생각할 어피니티 측 당초 취득가(24만5000원)로 가격이 최종 결정되면 어피니티 측이 투자한 1조2000억원을 전부 뱉어내야 한다.
예상되는 자금 조달 시나리오로, ‘신규 투자 유치’ 보다는 신 회장 지분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방법에 힘이 실린다.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해 2023년 8월 교보생명이 자사주 2%를 매입한 상황에서, 굳이 지분 희석 우려가 있는 신규 투자 유치를 택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36.7%)과 재무적투자자 지분을 합쳐 특수목적법인(SPC)에 넘기고, 해당 법인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약 60~70%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식이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어피니티 측 지분을 사들인 후, 앞으로 교보생명 IPO 과정에서 구주 일부를 팔아 담보 대출을 갚는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풋옵션 리스크를 제거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신규 투자자를 유치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FI를 우호 지분으로 맞아 자금을 확보한 후 어피니티 측 풋옵션을 사들이고, 중장기적으로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이미 신 회장이 다수의 국내외 FI를 적극 만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이번 중재안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신 회장이 오랜 기간 자금 조달 방법을 고민해온 것으로 안다. 꼭 어피니티 측 지분을 되사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중장기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가격 재산정 지연이나 중재 취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시간 끌기는 없을 것”이라며 “이번 중재 결과가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본다. 그간 분쟁 과정에서 일어난 주주와 기업가치 훼손을 정상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어피니티 측 관계자 역시 “가격 재산정 절차가 마무리되면 FI는 그동안의 지연 이자를 청구할 수 있다”며 “가격만 확정되면 이후 절차는 빠르게 이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시사점은
“무슨 일 생길지 몰라”…계약상 안전장치 필요
신 회장과 어피니티 측의 이번 분쟁은 IB업계에 주는 시사점이 분명하다. 투자 계약 시 애매한 부분이 없도록 분명한 책임 소지와 제반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분쟁은 최초 주주 간 계약 당시, 한쪽이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가격 산정 방법에 관한 합의가 빠져 발생한 사태다. IB업계에서는 이번 사례를 보며 계약서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경각심이 고조됐다. 특히 어피니티 등 IB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대거 포함됐음에도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부분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IB업계 내부에서는 투자 계약서에 변수와 책임 소지, 제반 조건 등을 최대한 명시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는 분위기다.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기존 계약서를 다시 검토하는 PEF 운용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어피니티 측은 신 회장이 풋옵션 행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를, 신 회장은 IPO가 불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아 발생한 분쟁”이라며 “이번 분쟁 이후 투자 계약 시 모든 사항을 꼼꼼히 작성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계약서 곳곳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