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83][프로토타입-03]닛산 자동차
일본 대표 완성차업체 혼다와 닛산이 경영 통합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양사는 지주사 체계로 합병해 각 브랜드를 독립 운영하는 한지붕 두가족 경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일본 1위 자동차기업이자 전 세계 완성차 1위 기업인 도요타에 이어 일본내 2~3위 업체인 혼다와 닛산이 합병할 경우 그 영향력은 무척 클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닛산은 이미 4위 업체 미쓰비시모터스 지분 24%를 보유한 최대 주주입니다. 즉 두 기업의 합병은 실제로는 2~4위 3개 기업이 합치는 것으로 3사의 연간 판매 대수는 무려 800만대에 달합니다.
글로벌 1위 도요타가 지난해 1120만대를 팔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인데요.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 2위는 924만대의 폭스바겐, 그리고 3위가 바로 대한민국 대표자동차기업으로 744만대를 판매한 현대·기아차입니다.

즉 지난해 기준으로 살펴볼 때 혼다, 닛산, 미쓰비시 3개 합병사가 탄생할 경우 현대·기아차를 밀어내고 전 세계 3위로 뛰어오른단 뜻입니다.
현대·기아차를 위협할 일본 자동차업계의 역습. 혼다의 창업이야기는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흥부전-12화)에서 다룬 바 있는데요. 오늘은 합병 파트너 바로 닛산 자동차의 탄생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도요타, 혼다, 마쓰다 등 일본을 대표하는 여러 자동차 브랜드는 사실 창업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3위 자동차업체 닛산은 사람 이름이 아닌데요. 닛산이 무슨 뜻인지 혹시 아시나요?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닛산의 작명법과 비슷한 문법으로 지은 한국기업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 기업은 바로 한화입니다. 매년 10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가을밤을 오색찬란 불빛으로 수놓은 서울세계불꽃축제로 대표되는 한화는 ‘한국화약(韓國火藥)’ 주식회사로 시작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화약류 국산화를 달성하며 사세를 키운 한화가 그 창업정신을 가을날 불꽃축제로 매년 기념하는 셈인데요. 닛산도 이런 방식으로 회사 이름을 지었습니다.

닛산의 원래 이름은 ‘닛폰산교’(日本産業)입니다. 한국식으로 읽으면 일본산업인데요. 닛폰과 산교의 머리글자를 한개씩 따서 지은 게 바로 닛산입니다. 한국식으로 표현해보면 닛산자동차는 일산자동차인 셈입니다. 일본산 자동차라는 뜻으로 의역해볼 수도 있는데요. 어찌 보면 멋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간단하고 단순한 닛산 자동차의 탄생. 그런데 일본 최초의 자동차를 도요타도 혼다도 아닌 닛산이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닛산 자동차의 시작은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산업혁명이 한차례 휩쓸고 간 미국에선 포드, GM과 같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자동차가 이미 출시됐습니다.
일찍이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온 일본에도 미국산 차량이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요. 일본인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꿈틀거렸습니다.

미국서 교육받은 자동차 엔지니어 하시모토 마스지로는 1911년 도쿄에 자동차 회사 ‘카이신샤’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미국 차를 직접 뜯어보고 연구·개발한 끝에 1914년 일본 최초의 국산자동차 ‘닷토(DAT)’를 출시합니다. 닷토라는 자동차 이름은 바로 창업자의 이름을 딴 브랜드인데요. 공동창업자이자 투자자이던 덴 켄지(D), 아오야마 로쿠로(A), 타케우치 메이타로(T)를 합쳐 DAT라고 지은 것입니다.

카이신샤는 이후 아예 회사 이름을 닷토 자동차로 바꾸고 대량 생산을 준비했는데요. 이미 1910년대에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대표 자동차 ‘모델 T’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포드에 맞서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회사의 어려움이 커졌고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을 마주했는데요.
이때 닷토 자동차를 구원해줄 사업가가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아이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실질적으로 닛산자동차를 탄생시킨 장본인입니다.

1880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그는 1903년 도쿄제국대학 공과대학 기계과를 졸업한 공학도였습니다. 졸업후 시바우라 제작소에 입사해 주철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1909년 히타치 금속을 창업합니다.
이후 그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습니다. 철공소와 전력시설, 광산업 등 사업을 광범위하게 확장해나간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재벌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1929년 구하라 광업사의 사장으로 취임하며 회사 이름을 ‘닛폰산교’(日本産業)‘로 아예 바꿔버립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업가이자 기업가로 일본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란 걸 회사이름으로 보여준 것이죠.

그리고 그의 마음 한쪽에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빛나는 일본 자동차 회사에 대한 열망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던 그 앞에 나타난 회사가 바로 닷토 자동차. 1931년 아이카와 요시스케는 닷토 자동차를 인수해 자동차 자회사로 인수합니다.
사실 이제 막 창업한 닛산은 해외기술 도입에 적극적였습니다. 미국 그레이엄-페이지사와 협업해 자동차 제조 기술 협력 계약을 맺고 기술을 들여온 게 대표적입니다. 닛산은 미국의 최신 자동차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미국에 직원을 보내 훈련했고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현대식 자동차 제작에 매진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자동차가 바로 ‘닷선 자동차’입니다. 초기모델 닷에다 아들을 뜻하는 영어 선(son)을 붙였고 이에 태양을 뜻하는 sun으로 변주해 닷선이 됐습니다. 495cc급 닷선자동차는 시장에서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성공을 직감한 그는 1933년 12월 회사 이름을 ‘자동차제조주식회사’라고 지었고 이듬해인 1934년 6월, 닛폰산교의 머리글자를 딴 ‘닛산’을 더해 ‘닛산자동차공업주식회사(日産自動車工業株式會社))’를 탄생시킵니다.
닷선 시리즈는 모델 10, 11, 15, 16 등 연이어 흥행을 기록한 신규 모델을 잇달아 출시했고 트럭 모델까지 선보이며 미국이 주도했던 일본 내 자동차 시장 판도를 바꿨습니다. 성능과 품질로 대표되는 닛산 자동차는 호주로 수출까지 하며 글로벌 자동차기업으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물론 경제대공황이 닥친 1930년대 중반, 일본 역시 대공황의 영향을 받았고 닛산자동차도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이에 닛산은 비용을 줄이고 소형 자동차 생산에 집중해 닷선14라는 모델을 선보입니다. 바로 일본에서 가장 경제적인 자동차라는 이미지가 바로 닷선 14에서 나왔습니다.

1935년, 어려운 상황에서 닛산은 요코하마에 일본 최초의 대규모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미국의 대량생산 기술을 충분히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서도 대량 생산 방식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반영이었습니다. 요코하마 공장에서 닛산은 일본 최초의 양산 자동차 닛산70을 생산합니다. 이는 일본도 세계적 수준의 양산 자동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대표적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세계 제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 군부를 도와 닛산 180과 같은 수송 차량 등을 만들어 사세를 키우며 역사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패전 후 일본이 연합군에 점령당한 뒤 사세가 크게 기울어질 수 있는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패전후 한반도서 벌어진 한국전쟁으로 미군 군용트럭을 발주받아 공급하는 등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이후 닛산은 본격적인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1955년 영국서 들여온 기술로 만든 ‘블루버드’ 차량은 1년에 20만대가 팔리며 닛산의 몸값을 드높였습니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1959년 닛산은 미국 진출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북미시장 공략에도 나섰습니다. 일본의 버블 성장기와 맞물려 폭풍 성장한 닛산은 1990년대 다시금 위기를 맞습니다.

장기 불황에 빠진 내수 경기로 판매량은 곤두박질 쳤고 파산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위기설이 불거졌습니다. 결국 회사는 르노자동차에 지분을 넘기고 기나긴 구조조정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1999년 카를로스 곤 CEO가 취임하며 3년간 전체직원 15% 감원, 사업구조 개편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결국 닛산은 회생에 성공합니다. 닛산은 이후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 인피니티를 성공적으로 출시시키고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한 분위기입니다.
닛산의 변신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르노에서 닛산, 닛산에서 미쓰비시로 이어지는 관계에서 이번엔 혼다와의 협력을 꾀하는 닛산. 과연 닛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일본 자동차업계서는 내구성은 도요타, 엔진은 혼다, 그리고 기술은 닛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기술력만큼은 닛산이 최고라는 뜻인데요. 일본 최초의 자동차 회사에서 시작해 폐업과 파산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닛산.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이란 뜻을 담고 있는 회사 이름만큼 이번 혼다와의 협력이 얼마나 시너지가 될지, 현대·기아차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