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7일 오후 울산 남구 신정동에서 울산의 첫 소프트웨어 교육 시설인 ‘종하이노베이션센터’ 준공식이 열렸다. 지하 1층~지상 6층, 연면적 1만9905㎡ 규모에 도서관, 체육관, 창업지원시설을 갖췄다. 총 사업비 532억원 중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89)이 건축비 전액인 330억원을 기부해 지었다. 이제는 휠체어를 탄 백발노인이 된 이 회장은 “제가 보람 있는 일을 했다. 감사하다”고 짧게 말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종하이노베이션센터는 1977년 이 부지에 실내체육관(종하체육관)을 지어 기부한 이 회장 부친 故 이종하 선생의 이름을 땄다. 울산 지역 천석꾼이자 사업가였던 이종하 선생은 그 옛날 자기 땅 1만2740㎡와 돈 1억3000만원을 기부했다. 40여년간 울산 시민의 체육·문화시설로 이용된 종하체육관이 낡아 문제가 되자 2020년 그 아들이 체육관을 허물고 이노베이션센터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기부를 결정한 이후에는 이 회장 장남인 이상현 KCC오토그룹 부회장과 차남 이상훈 시스원 대표가 실천에 옮겼다. 2022년 3월 착공해 약 2년 8개월 만인 지난 11월 문을 열었다.
울산에서 태어난 이주용 회장은 이종하 선생의 양자다. 친부인 강정택 농림부 초대 차관이 자녀가 없던 외삼촌 이종하 선생에게 양자로 보냈다. 친아버지가 사촌형이 된 셈이다. 부유했지만 검소했던 사업가 양부, 차관에서 물러난 이후 교편을 잡았던 친부. 두 아버지를 둔 이주용 회장은 1953년 경기고를 졸업한 뒤 일찌감치 유학길에 나섰다. 1958년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IBM에 취업하면서 컴퓨터라는 신문물을 접했다. 당시 청년 이주용은 코볼(Common Business Oriented Language) 언어 개발팀에 참여했다.
이후 휴가차 잠시 고국에 귀국한 것이 창업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한국에 국내 1호 컴퓨터인 일본 후지쓰의 ‘파콤 222’를 들여온 게 이주용 회장이었다. 그가 ‘한국 정보통신(IT) 산업의 문익점’으로 불리게 된 배경이다. 이 회장은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컴퓨터를 들여왔는데 그걸 운영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한국 1호 컴퓨터가 고철이 되면 산업 발전이 10년은 늦어지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어 한국에 남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1967년 설립된 국내 최초 소프트웨어 기업 ‘한국전자계산소’가 KCC정보통신의 전신이다.
한국전자계산소를 설립한 이주용 회장은 선박 설계 소프트웨어를 국산화했고, 한국은행을 비롯한 금융 업무 전산화와 기업 전산화를 일궈냈다. 오늘날의 주민등록번호 관리 시스템을 개발한 것도 이주용 회장 작품이었다. 당시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일본을 뒤따르기 바빴던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일본보다 7년이나 앞서 이뤄낸 프로젝트였다.
“전산화가 이뤄지면 일자리가 없어질까 두려워하는 은행 직원들이 전표 뭉치를 일부러 책상 속에 감추기도 하고, 회계가 투명하지 못하던 시대라 전산화로 투명하게 될 수 없는 사정이 있던 회사들은 전산화를 꺼려서 KCC가 아주 어려워졌습니다.”
호기롭게 설립한 회사가 생각보다 자리를 잡지 못하는 와중에 미국 상업용 컴퓨터 업체 유니박(Univac)이라는 회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해오면서 내심 봉급쟁이로 돌아갈까 고민도 했다고. 이때 아내인 최기주 여사가 “호화로운 생활보다는 의미 있는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왕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을 일구겠다고 칼을 뽑았으면 조금 어려워도 계속해야 하지 않겠어요?”라며 막아서준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유니박 제의를 거절한 대신 10만달러에 고문을 맡아주기로 하면서 회사는 위기를 넘기고 안정을 찾았다.
1990년 KCC정보통신에 들어온 큰아들 이상현 부회장은 2000년대 초반 정보통신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겠다 절감하고 수입차 딜러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중간에 딜러 사업을 주로 하는 KCC오토를 KCC정보통신에서 떼어내 KCC오토그룹으로 성장시켰다. 2000년 기준 한 해 매출이 1100억원였던 회사는 이제 KCC오토그룹 매출을 합쳐 연매출 2조원을 넘보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차남 이상훈 대표는 시스템통합(SI) 기업 시스원 대표를 맡고 있다.
KCC정보통신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2017년, 이주용 회장이 이상현 부회장을 불러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제 먹고살 만하냐고. 영문을 모르는 아들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이주용 회장은 폭탄선언을 했다. “내가 가진 예금, 주식 등 재산 절반인 600억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최기주 여사, 이상현 부회장과 이상훈 대표를 포함한 다섯 자녀는 별말 없이 아버지 뜻을 따랐다.
그렇게 이주용 회장은 2017년 150억원을 출연해 ‘미래와소프트웨어재단’을 세웠고 서울대 문화관 리모델링 기금, 서울대병원 발전 기금 등을 내놨다. 미래와소프트웨어재단에는 138억5000만원을 냈고, 종하장학회를 만들어 36억8000만원과 가진 주식을 내놨다. 울산 종하이노베이션센터에 330억원을 내놓고, 올 들어서는 51억5000만원을 내 운당나눔재단을 설립했다. 약속한 금액은 600억원이었지만 그동안 기부한 돈을 모두 합치면 전부 660억원이 넘는다.
이주용 회장은 “이제 속이 편하다. 여한이 없다”고 했다. 이상현 부회장은 “저희 할아버지 이종하 선생은 뭐든 아끼는 자린고비셨다. 그래도 돈을 쓰실 때 크게 쓰시는 분이셨다”며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종하체육관 기부를 결정하자 이를 아버지가 실현했고, 아버지가 종하이노베이션센터 기부를 결정한 뒤 제가 실현했다”고 말했다.
부자는 흔쾌히 마음먹은 것과 달리 기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더라고 털어놨다. 자칫 의미 없는 곳 여기저기에 돈만 퍼주고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용 회장은 “우리나라 IT 산업이 반도체 같은 하드웨어는 발전했지만 인공지능(AI)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분야는 미국에 뒤처진 것이 항상 안타까웠다”며 “그래서 그동안의 기부도 소프트웨어 인재를 기르는 교육장을 여는 데 집중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는 항상 ‘돈을 벌기는 쉽지만 잘 쓰기는 어렵다’면서 아끼고 또 아꼈다”며 “왜 그렇게 자린고비처럼 사셨는지 이제 알 것 같다”고 했다.
3대에도 기부를 이어가겠냐는 질문에 이상현 부회장은 “나도 기부 DNA를 물려받았다”며 웃었다. 이 부회장은 “종하체육관을 위한 기부는 할아버님이 하셨지만 그 실행은 아버님이 하셨다. 이번 종하이노베이션아카데미는 아버님이 결정하시고 나를 포함한 자녀들이 실행했다. 대를 이은 다음 기부는 우리가 결정하고 자녀들이 이어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7호 (2024.12.04~2024.12.10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