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79][오리저널-11] LA 레이커스
미국하면 떠오르는 그 곳. 미 서부를 대표하는 도시, 바로 LA입니다. 1년 내내 적은 비와 따뜻한 날씨는 LA를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이미지로 연결해 주는데요. 사실 LA는 전형적인 사막형 기후를 띠고 있습니다. 실제 LA 시내서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사막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게 있습니다. 농구는 잘 몰라도 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NBA 명문구단, 바로 LA 레이커스(Lakers)인데요. 현재 LA레이커스의 유니폼 스폰서팀은 다름 아닌 비비고. 한글로고를 가슴팍에 달고 뛰는 르브론 제임스의 모습은 어색하기까지 한데요.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것은 팀명에 호수(Lake)가 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사막형 기후인 LA에서는 호수가 아닌 오아시스를 찾아야 할 판입니다. 실제 LA 시내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를 제외하면 호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도 가장 경제규모가 큰 빅마켓 LA의 농구팀은 이렇게 아이러니한 팀명을 갖게된 걸까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찾아봅니다.
우선 ‘천사들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LA라는 도시의 어원도 한번 알아볼까요. LA 지역은 다른 아메리카 대륙이 그러했듯 아메리칸 원주민 통바(Tongva)족이 거주하던 곳이었습니다. 이들은 씨족 단위로 마을을 구성했는데 많을 때는 100여개의 마을을 조성해 살았습니다. 이들 원주민들은 LA 지역을 ‘옻나무가 많은 지역’이라는 현지언어인 ‘이양가( iyaanga)’라고 불렀습니다.

LA 지역을 처음 발견한 이는 스페인 탐험가 후 안 로드리게스 카브릴로로 추정됩니다. 그는 1542년 샌디에이고에 상륙하며 캘리포니아주에 도착한 첫 유럽인으로 기록을 남겼는데요. 샌디에이고에서 태평양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지금의 LA의 해안도시 샌피드로 지역에 도달했고 통바족도 만나게 됩니다.(흥부전48-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편 참고)
당시만 해도 원주민과 유럽인들은 서로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유럽의 선교사들이 중심이 된 식민지 개척자들이 하나둘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오기 시작하며 야욕을 드러냅니다.
1769년 8월 탐험가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와 프란치스코회 선교사 ‘후 안 크레스피’는 지금의 LA에 도착하게 됩니다. 선교와 포교를 목적으로 신대륙을 탐험하던 이들은 2년 동안 4개의 가톨릭교회를 세웁니다.
1771년 스페인 정부는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하며 ‘샌 가브리엘’ 교회를 짓고 건설 현장을 직접 감독했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세례받은 원주민들은 점차 이에 동화되기 시작했고 건설 등 여러 인프라스트럭처 조성에 동원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1781년, 스페인 총독 펠리페 데 네브 주도 아래 당시에 이곳을 흐르던 강물을 따라 44명으로 이루어진 정착민 마을을 설립했고 이를 ‘El Pueblo de Nuestra Senora la Reina de los Angeles de Porciuncula(The Village of Our Lady, the Queen of the Angels of Porziuncola)’라고 지었습니다. 이 이름이 바로 LA의 원래 이름입니다.

번역하면 ‘로스앤젤레스 강에서 온 천사의 여왕 성모 마리아의 마을’이라는 뜻. 그리고 이렇게 긴 이름은 시간이 흘러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로 바뀌었고, 그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 LA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자체가 바로 ’천사들‘을 지칭하는 단어죠. 그래서 LA의 별명이 천사의 도시입니다.
이처럼 스페인의 지배로 시작됐던 LA는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하며 멕시코 영토로 편입됐다가 1848년 미-멕시코 전쟁 때문에 미국의 영토로 넘어가게 됩니다. LA 문장을 보면 왼쪽 위에는 성조기가, 오른쪽 아래엔 스페인의 통치를 상징하는 문장, 왼쪽 아래엔 멕시코의 지배를 상징하는 뱀을 물고 있는 독수리가 들어있는데요. 문장 하나에 스페인과 멕시코, 그리고 미국의 복잡한 역사가 함께 담겨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미 서부 사막지대의 도시 LA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레이커스라는 팀명은 어떻게 붙은 것일까요. 역시 이번에도 연고지 이전의 역사에서 그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1937년 설립돼 1949년 NBA와 합병된 전미농구리그(NBL). 리그의 해가 저물어가던 1946년 이 리그에는 디트로이트 젬즈(Detroit Gems)라는 팀이 창단합니다. 창단 첫해 젬즈는 23연패를 포함 4승 40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경기당 관중은 불과 300명.

구단주였던 모리 윈스턴은 참담한 성적과 적은 관객으로 당시 기준 3만 달러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나아질 기미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 구단주는 농구팀을 매각하기로 결정해 시장에 내놓습니다. 이듬해인 1947년, ‘미네소타 데일리 타임즈’지의 기자 시드 하트먼이 중개에 나섰습니다.

지역에서 유명한 아이스쇼 사업가였던 모리스 찰펜과 영화관 사업을 하던 벤 버거를 대상으로 농구팀 매각을 설득한 끝에 결국 미네소타주의 제1도시인 미니애폴리스로 이전을 전격 결정합니다. 그리고 시드 하트먼은 중개를 넘어 농구단 단장으로 부임해 팀을 이끕니다. 미니애폴리스에는 3M, 타겟, 베스트 바이와 같은 미국을 대표하는 여러 대기업의 본사가 있습니다.
버거와 찰펜은 미니애폴리스 강당과 미니애폴리스 병기고를 번갈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팀이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막과 반대되는 물에서 시작합니다. 미니애폴리스가 있는 미네소타주는 북미 5대호 중 하나인 슈피리어호가 일부 속한 미국의 대표적 중부 주입니다. 원래 이곳에 머무르던 북서부 대평원의 아메리칸 원주민 연합인 수우족은 프랑스인들에 의해 다코타라 명명됐는데요.

이 곳의 원래 주인이던 이들의 이름에서 노스다코타주와 사우스다코타주가 탄생했고 이들이 쓰는 말에서 기원한 도시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미네소타는 다코타어로 ‘Mini Sota Makoce(미니 소타 마코체)’라 불린 데서 주의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이를 번역하면 ‘하늘빛 강물’이란 뜻입니다.
또한 미니애폴리스는 폭포를 뜻하는 다코타어 minnehaha와 그리스어로 도시를 뜻하는 polis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만큼 이 곳은 호수와 물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점입가경으로 오대호 주변에 위치한 미네소타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정말로 많습니다. 실제 공식적으로만 집계된 숫자만 1만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미네소타주 25센트 뒷면에는 이 곳 미네소타를 ‘LAND OF 10,000 LAKES’라고 표현합니다. 1만개 호수의 땅이란 뜻이죠.

버거와 찰펜은 이러한 미네소타의 지역·환경적 정체성을 팀명으로 가져오기로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팀이름이 바로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입니다. 호수의, 호수인들의 팀이란 뜻이죠. 이러한 물의 기운이 좋았던 덕이었을까요.
당시 세인트 토마스 대학교 농구팀 감독을 맡고 있던 존 쿤들라를 감독으로 영입한 미니애폴리스는 연고지 이전 첫해인 1947~1948년 NBL 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208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선수 조지 마이칸의 활약덕에 초창기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는 이후 NBA에 통합된 뒤 1950년대까지 5번의 우승을 추가하며 명실공히 NBA 명문팀으로 도약합니다.

초창기 황금기를 지난 레이커스는 1950년대 후반 위기를 맞이합니다. 구단주였던 벤 버거의 참견이 심해졌고 시드 하트먼과의 갈등이 심화했습니다. 특히 향후 NBA 스타가 된 빌 러셀을 영입하기 위해 하트먼이 적극 나섰으나 버거의 반대로 갈등을 이어간 끝에 결국 하트먼이 단장을 그만두게 됩니다.

마음이 떠난 버거 역시 1957년 레이커스를 사업가 밥 쇼트와 프랭크 라이언에게 재매각합니다. 1954년 마지막 우승후 레이커스의 성적도 내리막길이었습니다.우숭 후 콘퍼런스 우승은 고사하고 지구 우승도 실패하며 성적이 부진했던 레이커스 인기가 계속 떨어지며 경영난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NBA 5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음에도 마땅한 홈구장없이 무기고와 강당을 전전했습니다.

또한 당시 미네소타 경제가 침체기를 겪어고 스포츠팀 역시 이러한 찬바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실제로도 정말 추운 미네소타의 날씨 탓에 겨울스포츠인 NBA를 즐기려는 사람들 역시 적었습니다. 그리고 미네소타를 대표하는 제2의 도시이자 미니애폴리스의 쌍둥이 도시라 불리는 세인트 폴을 너무 홀대했다는 점도 지역 인기를 깎아내린 원인으로 불립니다.
실제 미네소타의 야구팀 이름은 ’미네소타 트윈스‘인데요. 이는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이란 두 도시를 쌍둥이라 부르는 데서 기원했습니다. 이처럼 동등하게 대우해도 모자랄판에 노골적으로 미니애폴리스를 대표하는 팀으로 두다 보니 세인트폴 주민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1961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미니애폴리스는 연고지 이전을 검토합니다.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 등이 후보였는데 최종적으로 낙점된 곳이 바로 LA였습니다. 하지만 5차례의 우승을 달성한 명문 팀의 별칭 레이커스는 이미 전국구로도 이름을 알린 상태였습니다. 결국 LA로 연고지를 옮겼지만 팀명은 그대로 LA Lakers로 쓰기로 합니다. LA 지역 사람들은 오히려 LA 사람들을 팀명과 합쳐 LA-Kers를 LA 사람들이란 뜻으로 의미부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동부팀 최초로 서부로 이전한 스포츠팀이 된 LA 레이커스는 이후 제리 웨스트, 윌트 체임벌린 시대를 지나 카림 압둘자바, 매직 존슨의 쇼타임 레이커스, 그리고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 콤비의 등장으로 이어지며 NBA를 대표하는 명문팀으로 거듭났습니다.

사막지대 LA에 위치한 호수팀, LA 레이커스. 어쩌면 아이러니 같은 팀명이지만 오아시스를 찾는 사막의 상인처럼 앞으로도 우승을 향한 팀의 갈증은 끊이지 않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