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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 대수술’ 칼을 빼들다

김경민 기자
입력 : 
2024-11-28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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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세운 ‘당근과 채찍’…길들여질까

정부가 ‘부동산 시장 뇌관’으로 급부상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시행사가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경우 세제 혜택이라는 ‘당근’을 주는 동시에 자기자본비율이 낮을수록 금융권이 대손충당금을 더 쌓도록 하는 ‘채찍’을 병행한다. 부동산 개발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뿌리 뽑겠다는 포부인데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부동산 PF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사진은 수도권 아파트 건설 현장. (윤관식 기자)
정부가 부동산 PF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사진은 수도권 아파트 건설 현장. (윤관식 기자)

‘돌려막기 병폐’ 부동산 PF 사업

3억만 있으면 100억짜리 사업 가능

정부는 최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부동산 PF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2022년 강원도 춘천 레고랜드 사태 등 반복되는 부동산 PF 위기의 원인이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중이 낮다는 데 있다고 보고,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혜택을 주기로 했다.

부동산 PF는 개발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미래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 기법이다. 국내 부동산 PF 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 230조원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정부가 자기자본비율을 손보려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국내 부동산 개발 사업은 사실상 ‘돌려막기’라는 지적이 많았다. 부동산 개발은 크게 토지 매입부터 진행되는 인허가 단계, 개발과 분양이 시작되는 시공 단계, 준공 후 단계로 나뉜다.

구체적인 사업 구조는 이렇다. 일단 부동산 개발업체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높은 이자율의 브리지론으로 돈을 빌려 땅을 산다. 브리지론은 개발업체들이 사업 초기에 토지 매입, 인허가 비용 등을 융통하는 고금리 단기 차입금을 말한다.

그 후 은행에서 낮은 금리의 대출 즉 본PF를 받아 브리지론을 갚고 건설을 지속한다. 이후 입주자들이 주택담보대출로 마련한 잔금을 받아 본PF를 갚는다. 개발업체들은 이 같은 돌려막기 구조로 소규모 자기자본으로도 수조원대 부동산 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자기자본비율이 낮다 보니 40%에 달하는 토지비를 고금리 대출로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는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구조다. 미국, 일본에서는 부동산 디벨로퍼가 금융사, 연기금 등 지분 투자자를 유치해 자기자본 30~40%를 보유한 상태에서 토지를 매입한다. 이후 사업 인허가까지 완료된 이후 건설 단계에서 PF 대출을 받는다. 실제 필요한 공사비만 PF 대출로 조달한다는 의미다.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개발업체 모리빌딩이 무려 17년에 걸쳐 완성한 장기 프로젝트로, 총 사업비 2700억엔(약 2조4300억원) 중 37%인 1000억엔(약 9000억원)을 직접 출자했다. 미국에서도 개발업체가 총 사업비의 20~30% 수준의 초기 자본금을 마련한 뒤 토지 담보를 해제한 후 건설자금만 금융권에서 조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PF 사업은 자기자본비율이 3% 안팎이라 총 사업비의 20~40%를 차지하는 토지 매입 단계에서부터 고금리 대출을 받는다. 3억원만 있어도 100억원짜리 사업을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1~2023년 추진된 300여개 PF 사업을 분석한 결과 개발업체의 자본 투입 비율은 평균 3.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97%가량을 대출에 의존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은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하기보다 건설사, 신탁사의 보증 즉 책임준공확약에 의존해 대출해주는 기형적인 구조였다. 시행사 대신 시공사가 리스크를 과도하게 짊어진다는 의미다. 이런 구조 아래서 금리가 오르거나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 PF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대형 프로젝트는 사업이 1년만 지연돼도 순식간에 이자가 몇십억원에서 몇백억원씩 쌓인다.

특히 올해 PF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 중 절반 이상은 브리지론이라 부실화 가능성이 크다. 한국신용평가의 ‘증권사 부동산 금융 손실 시나리오 테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PF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 약 14조원 중 58.4%(약 8조2000억원)가 브리지론으로 나타났다. 브리지론을 받은 이후 공사를 착공하면 시중은행 등에서 조금 더 낮은 금리로 본PF 대출을 받아 브리지론을 갚는다. 예정된 일정대로 착공하면 괜찮지만, 사업이 지연될 경우 본PF로 넘어가지 못해 막대한 손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수백여 개 사업장이 대주단 협약을 통해 신규 자금 지원, 만기 연장, 이자 유예 혜택을 받아 연명한다. 부동산 개발업체에서 시작된 리스크가 건설사, 금융사로 확산될 위험도 크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행 PF 제도를 두고 “분양가가 폭락하면 줄줄이 폭망하는 구조”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진설명

부동산 PF 제도 개선 방안 발표

3%대 자기자본비율 20%대로 높이기로

이를 두고 본 정부는 부동산 PF 구조 근본 틀부터 바꾸기로 했다. 이번 PF 제도 개선의 핵심은 땅 주인이 토지, 건물을 리츠에 현물출자하도록 유도해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지금은 개인, 기업이 보유 토지를 PF 사업에 출자할 때 법인세,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내년 조세특례법을 개정해 과세를 이연하기로 했다. 토지주가 시행사에 토지, 건물을 현물로 출자하면 세금 납부를 늦춰준다는 의미다.

이 방안은 미국에서 1992년 도입돼 리츠 시장 성장세를 이끈 일종의 ‘업리츠(UP-REITs)’ 방식이다. 토지주가 땅을 팔고 손을 터는 것이 아니라, 현물출자를 통해 리츠 주주로 직접 참여한다. 배당으로 사업 수익을 나누면 토지 매입 비용이 들지 않고, 자기자본비율은 높아진다. 국토교통부는 수도권 주요 지자체 내 100평 이상 주거, 상업지역의 나대지 7000만㎡를 현물출자 대상으로 본다. 김승범 국토교통부 부동산투자제도과장은 “유휴 토지 현물출자가 활성화되면 토지 매입을 위한 대출 규모가 줄어 사업비 절감과 그에 따른 분양가 인하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물출자 방식을 추진하는 선도 사업 후보지는 용적률과 건폐율 규제도 완화해줄 계획이다. 만약 토지주가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같은 정부 정책 사업에 땅을 현물출자하면 리스크를 줄여준다. 토지 용도 제한과 건폐율, 용적률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공간혁신구역’에 랜드마크 빌딩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공공에서 리츠 설립과 사업성 분석 컨설팅도 지원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어지는 건물을 매입하겠다는 확약을 해줘 사업성을 보완하는 식이다. 서울시도 힘을 보탠다. 자기자본비율이 높은 PF 사업에 용적률, 공공기여 완화 등 도시 규제 특례를 적극 부여하기로 했다.

또한 개발업체가 준공 후 부동산을 직접 관리, 운영하는 개발 사업에 대해선 용적률 상향, 기부채납 완화 등의 혜택도 주기로 했다. 현재는 시행사들이 개발 사업을 끝낸 뒤 분양만 잘되면 큰 수익을 거두는 구조다. 이는 쪼개 팔기 쉬운 사업장을 만드는 데 치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비해 미국, 일본 대형 시행사들은 직접 부동산을 운영하면서 임대수익을 올린다.

정부는 각종 당근책을 제시하는 동시에 채찍도 가한다. 일단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사업장은 대출 문턱을 높인다. 정부는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가 PF 대출 때 쌓아야 하는 자본금과 대손충당금 비율을 PF 사업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차등화하기로 했다. 금융사가 자기자본비율 20%를 기준으로 이보다 낮은 PF 사업장 대출에 현행보다 높은 위험가중치와 대손충당금을 적용한다. 위험가중치가 올라가면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진다.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으면 그만큼 이익이 줄어든다. 이를 통해 자기자본비율이 높은 PF가 대출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구조를 유도한다는 것이 정부 의도다.

현재 PF 대출 위험가중치는 은행이 150%, 2금융권은 100%다. 일례로 은행이 PF 사업장에 50억원을 대출해주면 BIS 자기자본비율을 산출할 때는 75억원을 빌려준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PF의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PF에 등급을 주고, 각 등급에 따라 위험가중치를 차등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손충당금은 연체 등 부실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금융사가 미리 적립해야 하는 비용이다. 정상 사업장도 은행은 대출액의 0.9%, 저축은행은 2%를 쌓아야 한다. 금융위는 은행 기준으로 PF의 자기자본비율이 20%면 0.9%를 유지하고, 30%면 0.7%를 적용하는 식으로 차등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당국은 또 상호금융, 캐피털, 새마을금고는 저축은행과 마찬가지로 자기자본비율이 일정 수준 미만인 PF 사업장 대출을 제한하는 방안도 들여다보기로 했다. 상호금융, 캐피털 등은 다른 업권과 달리 위험가중치 규제가 없는 점을 보완하는 조치다.

거액신용공여 한도 규제도 정비한다. 이 규제는 각 금융사 자금이 특정 분야에 쏠리지 않도록 제한하는 장치다. 현재 은행에서는 부동산 PF가 아니라 전체 여신에만 이 규제가 도입돼 있다. 정부는 각 금융사의 부동산 PF 대출 합계가 자기자본의 일정 비율을 초과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문평가기관의 PF 사업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평가 기준과 절차도 마련한다.

개발업체가 채무불이행 시 건설사에 과도한 의무를 지우는 책임준공 관행 개선 방안도 내년 1분기 추가로 마련한다. 이를 통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처럼 시행사를 개발은 물론이고 운영까지 맡는 ‘종합 디벨로퍼’로 육성할 계획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PF 사업이 고금리 대출 구조에서 자본 투자 방식으로 전환되도록 지원하겠다. 전국의 PF 사업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PF 통합정보 시스템’도 속도감 있게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PF 대책 효과 낼까

방향 맞지만 영세 디벨로퍼 부도 우려도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부동산 PF 대책은 과연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일단 건설업계는 ‘초점을 제대로 맞춘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대한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한국부동산개발협회는 최근 공동으로 입장을 내놓고 “정부 대책은 부동산 PF 사업의 근본적인 구조 개선을 통해 경제 위기마다 반복되던 고질적인 한국형 부동산 PF의 문제점을 해소할 것이다. 국내 PF 사업 선진화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는 향후 책임준공 관련 불공정 요소 개선, 부동산 PF 수수료 관행 개선에 대해 민관 합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열고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건설경기 침체로 PF 시장이 극도로 얼어붙은 상황에서 자기자본비율 강화 방안까지 시행하면 사업 환경이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발업체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토지주가 PF 사업에 현물을 출자할 경우 세제 혜택, 용적률 완화 혜택을 부여하는 대신, 금융사 대출 금액을 조절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제, 용적률 완화 혜택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될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A개발업체 관계자는 “선진국 개발 사업처럼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기자본을 높일 때 얼마나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가 애매하다. 파격적인 혜택을 주지 않으면 사업성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려는 업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경우 가뜩이나 경영난에 내몰린 소형 개발업체 경영이 더 어려워져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업 성공 사례가 많고 자기자본이 넉넉한 일부 대형 개발업체들만 수혜를 입지 않겠냐는 우려다.

국내 부동산 개발업계는 전체의 95%가 연매출 100억원 이하 영세 업체다. 이렇다 보니 ‘옥석 가리기’ 과정에서 2400개에 달하는 개발업체 중 영세 업체들이 도태될 수도 있다. 한 중소 건설사 임원 B씨는 “현금 여력이 좋은 극소수 디벨로퍼들은 괜찮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형 디벨로퍼들은 사업 문턱이 높아져 아예 PF 사업을 접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발업체들이 줄줄이 경영난에 처할 경우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가뜩이나 고금리, 공사비 인상 여파로 개발 사업이 주춤한 상황에서 수도권 주요 개발 프로젝트가 중단될 경우 주택 공급이 급감할 우려도 크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아파트 분양 물량은 6만8633가구로 201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0년(10만9306가구)과 비교하면 40%가량 줄었다. 올해 예상 분양 물량은 5만9850가구로 지난해보다 더 적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개발 사업 실적은 매출 기준 28조7152억원으로 전년 대비 39.3% 감소했다. PF 규제 강화로 이미 추진 중인 아파트 개발 사업 돈줄까지 막으면 머지않아 극심한 공급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자기자본 비중 규제를 두면 결국 본인 땅을 가진 대형 업체들만 시행을 할 수 있어 공급을 늘릴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은행과 보험사가 장기임대주택 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연기금 같은 재무적 투자자를 PF 사업으로 유인할 수 있는 방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시행사가 자기자본의 대부분을 보험사와 연기금, 은행의 일종인 연방저축조합의 투자로 조달한다. 일본 역시 대형 은행이 리츠 형태로 지분 투자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정성을 중시하는 국내 금융사들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구조인 부동산 개발 사업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PF 대책 실행과 동시에 PF 사업장 옥석 가리기를 속도감 있게 진행해 PF 시장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속한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위해 브리지론 단계의 부실 PF 사업장을 서둘러 정리하는 한편 사업성 있는 PF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부동산 개발업계 선진화를 위해 정부가 ‘실적 신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적 신고제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부동산개발등록사업자의 사업 실적을 확인해주는 제도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은 “실적 신고제를 도입하면 전문성과 투명성을 확보해 부동산 개발업계의 질적 성장을 끌어낼 수 있다. 역량을 갖춘 개발업체가 도심 복합개발, 역세권 개발, 노후계획도시 정비 등 대단위 도시 공간을 조성하는 데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6호 (2024.11.27~2024.1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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