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에서 분리한 LX그룹이 출범 초기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2021년 출범 이후 어느새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룹 인지도가 미미한 데다 실적도 부진해 ‘홀로서기’가 녹록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본준 “1등 DNA” 강조했지만
계열사 수익성 악화 시달려
LX그룹은 지주사 LX홀딩스를 중심으로 LX인터내셔널(구 LG상사), LX세미콘(구 실리콘웍스), LX하우시스(구 LG하우시스), LX MMA(구 LG MMA) 등 4개 자회사와 LX인터내셔널의 자회사 LX판토스(구 판토스)를 손자회사로 뒀다. 2021년 5월 출범 당시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핵심 가치인 ‘연결’ ‘미래’ ‘사람’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로의 연결을 이루자.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1등 DNA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임직원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출범 초기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계열 분리 1년이 지난 2022년 말 LX그룹 전체 매출은 25조2732억원, 영업이익은 1조3457억원으로 계열 분리 전인 2020년 대비 각각 57.7%, 234.3% 급증했다. 그해 그룹 자산총액은 2020년 대비 4조936억원가량 증가한 11조2734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최근 계열사마다 수익성 악화에 내몰리는 중이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 기업 LX세미콘은 반도체 업황 침체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290억원에 그쳐 전년 대비 60%가량 감소했다. 계열 분리 이후 처음으로 1000억원대로 떨어졌다.
당분간 실적 반등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LX세미콘은 사실상 독점 공급하던 LG디스플레이의 애플 아이폰 시리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물량 상당수를 대만 노바텍에 내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DDI는 디스플레이의 각 화소에 적절한 양의 전압을 공급해 색과 밝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글로벌 DDI 시장 2위 기업인 대만 노바텍은 올해부터 LG디스플레이에 DDI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서는 공급망 다변화를 통한 원가 절감이 절실한 상황이라 노바텍과 손을 잡았고, LX세미콘에 비상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LG디스플레이 OLED용 DDI 공급 물량 중 LX세미콘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미만으로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상반기 LX세미콘 매출에서 DDI 비중이 무려 90%에 달하는 만큼 실적 악화 우려가 커졌다. LX세미콘은 부랴부랴 DDI에 편중된 매출 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자동차 부품용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방열 기판 등 신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단기간 내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이 여파로 LX세미콘 주가도 하락세다. 한때 17만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최근 6만원대로 떨어졌다. 키움증권은 LX세미콘 목표주가를 11만원에서 9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김소원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LX세미콘 주가가 반등하려면 주력 제품인 DDI의 고객사 점유율 회복이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재계 관계자는 “LX세미콘은 실적 부진 책임을 물어 지난해 말 손보익 사장 대신 삼성 출신의 이윤태 사장을 신임 수장으로 앉혔지만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에 성공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듯싶다”고 전했다.
또 다른 계열사인 종합상사 업체 LX인터내셔널도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와중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4331억원에 그쳐 전년 대비 ‘반 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미국발 고금리 기조가 지속된 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석탄, 금속 등 자원 시황이 악화된 영향이 컸다. 경쟁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1631억원으로 2022년(9025억원) 대비 30%가량 오른 것과 대비된다.
올 상반기에도 LX인터내셔널 영업이익은 240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4% 감소했다. LX인터내셔널은 수력, 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면서 반등 기회를 노린다.
석유화학 계열사인 LX MMA 사정은 더 심각하다. 2021년까지만 해도 영업이익이 1568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547억원으로 감소하더니 지난해에는 15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LX MMA가 적자를 낸 것은 1993년 이후 30년 만이다.
주력 계열사들이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면서 지난해 LX그룹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18.4% 감소한 20조6250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1.2% 감소한 6569억원을 기록했다.
수익 부진에 시달리는 LX그룹 입장에서는 반전의 기회가 절실하다. 구본준 회장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인수합병(M&A) 시장에 속속 뛰어들었다. LX그룹은 HMM 인수를 통해 LX인터내셔널, LX판토스 등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지만 하림, 동원그룹과의 경쟁이 격화되자 끝내 본입찰에 불참했다. 당시 LX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 2조5000억원 수준에 그쳐 ‘무리한 투자’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나마 LX인터내셔널이 건축, 자동차용 판유리 업체인 한국유리공업을 인수했고, 친환경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운영하는 ‘포승그린파워’를 품에 안아 신재생 발전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지만 아직까지 성과를 거론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LX그룹이 출범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캐시카우 역할을 할 만한 사업이 마땅찮은 모습이다. 수익성 회복에 힘쓴 뒤 우량 매물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우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후계 구도 어떻게
구본준 장남 구형모 승계 관심
LX그룹 실적이 불안한 상황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관심이 쏠린다. 구본준 회장의 장남 구형모 LX MDI 부사장이 경영에 참여하는 만큼 머지않아 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LX MDI는 LX그룹 계열사의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 컨설팅과 IT·업무 인프라 혁신, 그룹 미래 인재 육성 등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과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평가다.
다만 구형모 부사장은 아직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은 데다 외부 공개 활동도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가 2014년 LG전자 과장급으로 입사했다. 2021년 계열 분리 이후 LX홀딩스 경영기획담당 상무를 맡았고, 1년여 만에 전무를 거쳐 부사장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LX그룹 지배구조는 지주사가 각 계열사, 자회사를 지배하는 가운데 구본준 회장이 지주사 최대주주(20.37%)다. 장남인 구형모 부사장이 2대 주주(12.15%), 딸 구연제 씨가 지분율 8.78%를 가진 3대 주주다.
“구연제 씨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데다 범LG 가풍에 따라 구본준 회장 경영권은 자연스레 장남인 구형모 부사장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구본준 회장이 왕성히 활동하는 데다 구형모 부사장이 아직 젊어 경영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만큼 승계 구도를 거론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한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