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워도 너무 더웠다. 90세 넘은 이웃집 할머니가 체감상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문제는 올해가 그나마 가장 덜 더운 여름이라는 불길한 예감이다. 올해 여름의 기온이 이상 기온이 아니라 이제는 평상 기온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가장 고통받는 계층은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와 같은 취약계층이다. 전미 출판협회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의 ‘폭염 사회’는 1995년 시카고에서 발생한 폭염에 의한 사망이 ‘사회 불평등’ 문제라고 지적한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폭염과 열대야가 닥치면 쪽방촌 거주민이나 노숙인에 대한 특별 대응책이 발표되곤 한다. 냉방 용품 지원이나 무더위 쉼터의 제공도 필요하겠으나, 근본적인 대비책은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갖추는 것이다. 이 무더위에 불안정한 전력으로 공급 중단이라도 되면 어떨지 상상조차 두렵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에너지원 중에서 가장 저렴한 발전 비용으로 단위 면적당 대규모 전력 생산이 가능하면서도 밤낮 가리지 않고 사시사철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원자력 발전(원전)뿐이다. 게다가 AI 기술 개발로 점차 늘어나는 막대한 전력 수요는 더욱 원전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러기에 한때 탈원전을 세계적 표준으로 내세웠던 유럽에서 이제는 오히려 원전을 강조한다. 지난 3월 브뤼셀에서 열린 ‘원자력 정상회의’에서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원전의 안전한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청정 에너지원을 대규모로 확보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고 선언했다. 이보다 앞서 이미 2022년 7월 EU는 탄소중립에 맞는 친환경 산업분류 체계인 ‘그린 택소노미’에 원전을 추가함으로 정부와 기업의 원전 투자 확대의 길을 열었다.
원전이 전체 전력의 70%를 차지하는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의 초기 탈원전 정책에서 유턴해 신규 원전 14기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2030년까지 1개 원전만 남기고 모두 폐쇄하겠다는 영국은 2050년까지 최대 8기의 원전을 더 짓기로 했다. 탈원전 정책을 국민투표로 결정한 스위스와 이탈리아조차도 신규 원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의존도를 낮추려 했던 일본 역시 기시다 총리 때 원전 재건축과 운전 기간 연장을 통한 ‘최대 활용’으로 변경했고, 차기 이사바 총리도 여기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는 신재생에너지만이 인류의 유일한 선택이라는 섣부른 구호가 횡행했지만, 세계는 이렇게 급변하고 있다. 신재생은 신재생대로 원전은 원전대로 현실에 맞춰 개발된다. 에너지 문제만큼은 이념이나 이상에 얽매일 수 없는 국가 존립의 실재적 문제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체코에 20조원 규모의 대형 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한때 탈원전에 사로잡혀 온 국토를 태양광 발전시설로 뒤덮은 과거에 비하면 값진 성과다.
이번 겨울은 역대급 추위가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올해 여름 40도’를 맞혀 족집게 기상학자로 불린 김해동 계명대 교수는 “겨울은 영하 18도까지” 내려가는 한파가 닥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만큼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에너지원은 더욱 중요시될 것이다.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고리 2호기에 이어 고리 3호기 원전이 중단됐다. 9월 말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에서는 환경단체가 원전 중단의 시위를 벌였다. 낭만적인 탈원전으로는 현실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변화하는 세계가 말해주고 있다.

[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총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1호 (2024.10.23~2024.10.29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