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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新문물 ‘빨간 배추김치’ [조홍석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 이야기’]

조홍석 삼성서울병원 커뮤니케이션수석
입력 : 
2024-10-05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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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났습니다. 매년 설날과 추석이면 가족과 친인척 간 끈끈한 정을 나누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막상 명절이 즐겁지 않은 집안도 많습니다.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고등학생과 N수생, 취업 준비생, 결혼 안 한 싱글들에게는 어쩌다 명절에만 보는 친척들의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에 차라리 명절에 고향에 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명절 스트레스가 없어지진 않습니다. 고부간 갈등이라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얼마 전까지는 차례 모시기나 처갓집 방문이 주요 고부 갈등 이슈였다면 최근에는 ‘김장 스트레스’가 화두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담그고 이를 나누는 것이 연례행사였지만 요즘은 김치를 사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겨울이라고 먹을거리가 부족하지 않는 시대다 보니, 굳이 김장 필요성을 못 느끼는 며느리와 여전히 직접 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 사이 의견 대립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장 담그기가 겨울철에 먹을 식량을 보관하기 위해 우리 조상이 수천 년간 이어온 지혜인 건 맞지만, 대표적 김장 김치인 빨간 배추김치의 역사는 채 100년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인가 싶겠지만 빨간 배추김치의 재료를 들여다보면 실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재료인 고추를 먹기 시작한 건 조선 후기 17세기 이후에 비로소 시작됐습니다. 고춧가루가 널리 사용된 건 채 10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고추를 손으로 빻아 가루로 만들기 어려웠기에 주로 가늘게 채를 썰거나 고추기름으로 사용하다 1920년대에 제분 기계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고춧가루를 수월하게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1930년대 발간된 ‘조선요리 대백과’에도 김치 제조법으로 소금에 절인 백김치 위에 고추를 실처럼 잘게 썰어 넣으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하니 지금과 사뭇 달랐던 모양입니다.

유전학 성과로 만들어낸 ‘하이브리드’ 음식(?) 고추장 역시 고춧가루와 밀가루를 혼합해 만들어야 하기에 1950년대 미국에서 보급받은 밀가루가 보편화되면서 비로소 널리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그뿐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통통한 배추는 1950년대에 우장춘 박사가 개량에 성공하면서 만들어진 신품종입니다. 원래 우리 땅 조선 배추는 길쭉하고 얇아 무김치보다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전통 요리로 알고 있는 빨간 배추김치는 물론 최근 세계적 인기를 끄는 각종 매운맛 K-푸드는 20세기 기계공학의 발전과 유전학적 성과가 만들어낸 하이브리드 요리라고 봐야 합니다.

이처럼 풍속은 매일매일 변합니다. 30여년 전만 해도 전기밥솥을 사서 밥을 해 먹는 게 신기했지만, 지금 청년들은 즉석 햇반을 사 먹는 게 일상일 정도로 일상 풍경이 변하고 있기에 집에서 김장하는 풍경을 보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보입니다.

소중한 미풍양속이 사라져가는 게 아쉽다고요? 지켜야 할 소중한 전통일지 새로운 변화에 맞춰 적응해야 할지 가족 간에 잘 상의해 오해는 줄이고 이해는 늘려가는 게 옳은 방향 아닐까요.

2052년이 되면 1인 가구가 10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문가 전망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가족이 함께하는 광경이 줄어들겠죠. 만남이 더욱 소중해질 명절에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화목한 시간이 늘어나기를요.

사진설명

[조홍석 삼성서울병원 커뮤니케이션수석]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8호 (2024.10.02~2024.10.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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