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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 공포 덮친 한국 … 당장 필요한 건 화재 진압책 [Science in Biz]

입력 : 
2024-08-21 1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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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배터리 쓴 전기차 화재땐
기존 물·질식 소화법 안 통해
전기차 공포증 점점 커지는데
정부는 충전제한 등 뒷북대책
업계도 화재 예방기술에 집중
불 빨리 끄는 방법부터 개발을
지난 8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로 전소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감식이 실시됐다.  뉴스1
지난 8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로 전소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감식이 실시됐다. 뉴스1


리튬배터리는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화학전지'다. 겉모양은 건전지지만 속은 가연성 화학 물질로 채워져 있다. 이런 리튬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에 불이 붙었을 때 소방관이 어렵지 않게 진화하는 것을 필자는 보고 싶다. 이것만이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를 극복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리튬배터리가 화재 시 왜 진압이 힘들며, 대부분 전소되는가를 살펴본다.

가연성 화학 물질은 주로 탄소와 수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저비점의 탄화수소계 물질이어서 연료의 역할을 한다. 연소의 3요소인 연료, 산소 그리고 열(에너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연소가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 소화는 연소의 3요소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을 차단해 연소의 순환 고리 중 한 곳을 끊음으로써 실현된다.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물을 뿌리는 것은 연소에 필요한 열도 제거하지만 대기 중의 연료의 농도를 내려 연소를 억제시키기 위한 것이다. 또한 연료 주변 공기 중의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 소화 방식은 대부분 화재에 적용 가능하고 다양한 소방 약제가 충전된 소화기에 널리 쓰이고 있는 가장 확실한 소화법이다.

그러나 전기차 화재에는 물 소화나 질식 소화가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 전기차 하단부에 위치하는 배터리는 손상을 막기 위해 단단한 금속으로 둘러쌌기 때문에 불이 붙었을 때 발화 지점에 직접 물을 부어 끄기가 어렵다. 전기차 배터리는 케이스 내부의 위 커버와 아래 커버 사이에 고무로 방수 처리가 돼 있어 애초에 물이 화재 부위에 침투할 수 없는 구조다.

질식 소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배터리에 사용되는 액체 전해질의 특성에 기인한다(리튬배터리의 4대 핵심 소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이며 전해액은 다시 리튬염과 전해질로 구성된다). 리튬배터리 화재 대부분의 원인으로 지목되듯이 양극과 음극이 만나 단락(합선)이 발생하면 휘발성·가연성의 액체 전해질이 연료가 돼 불이 붙는다.

그런데 현업에서 사용하는 '카보네이트형' 및 '에테르형' 액체 전해질은 '함 산소 화합물'이기에 화재 시 배터리 셀 내의 산소 농도를 증진시켜 외부 공기의 유입이 없어도 연소 시 부스터의 역할을 할 수 있고 실제로 열 폭주의 요인이기도 하다.

이렇듯 배터리의 작은 셀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열과 불이 다른 셀로 빠르게 번져 나간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물 소화와 질식 소화가 전기차 화재의 진압에 거의 무용지물인 셈이고 배터리 내 가연성 화학 물질이 모두 탈 때까지 기다려야 불이 꺼지고 이 과정에서 전기차는 결국 전소되는 것이다.

지난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시민들 사이에서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되고 있다. 주차된 전기차에서 연기가 치솟고, 전기차 한 대의 화재로 차량 40대가 전소됐으며 600여 대가 그을음, 분진 피해를 보고 전기와 식수 공급이 중단돼 470가구가 이재민 신세가 된 것을 보고 전기차 화재의 파괴력을 실감했다.

화재 후 당연히 각계 전문가들이 근거 없는 다양한 화재 원인을 쏟아냈다. 세계 10위권인 중국 기업 파라시스의 배터리가 불량이다, 배터리의 누전이 의심된다, 배터리의 전압·냉각 시스템 이상이다, 배터리 보호 차체의 손상이다,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작동되지 않았다 등등. 한편으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정부를 포함한 각계 다양한 전기차 포비아 대책도 발표됐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 충전율 90% 제한, 아파트 단지 등에서 전기차 충전기를 지하 대신 지상에 설치 등등. 하지만 전기차 화재의 원인이 밝혀지고 화재 예방책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소비자가 두려움 없이 전기차를 살까.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2017년을 지나면서 리튬배터리의 주 용도가 IT 제품에서 전기차로 바뀌었다. 중대형 리튬배터리는 '탈탄소'라는 글로벌 트렌드 속에서 재생에너지 보급 및 전기차 확산 등 대부분 나라의 정책 핵심으로 자리매김하며 급속히 성장해왔다. 한국도 양극재(에코프로비엠·LG화학·포스코퓨처엠·엘앤에프)-동박(SK넥실리스·롯데에너지)-배터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전기차(현대차·기아)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완성했다.

하지만 전기차의 본격적인 대중화가 늦어지면서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산업은 전기차 포비아로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그동안 국내에선 전기차 보급에만 매달리느라 안전 대책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안전이 흔들리면 궁극적으로 전기차 보급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배터리업계와 전기차 회사는 깨달아야 하고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필자는 이번 청라 화재를 계기로 전기차 포비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기차의 화재 소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전기차업계는 열 폭주를 막기 위한 냉각 시스템 고도화, 화재 위험이 낮은 전고체 배터리 개발, 불량률 제로에 가까운 배터리 셀 제조 공정의 고도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고도화 등 예방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해서 걱정이 앞선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전기차 '화재 예방책'이 아니라 '화재 진압책'이다. 특히 액체 전해질과 같은 가연성 화학 물질은 거의 연료의 특성을 보이기에 배터리 제조사는 사용하는 액체 전해질의 종류, 끓는점, 인화점, 발화점, 증기압, 기화열 그리고 폭발 한계 등 화학 정보를 소방당국에 제공해 전기차 화재용 신규 소화 약제와 소방법을 필사적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다.

화재는 불시에 찾아오고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도 화재는 일어난다. 리튬배터리의 화재 진압책을 못 찾으면 배터리는 '시한폭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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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왼쪽) 라병호 '배진영 교수' 유튜브 채널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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