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용GPU 만들던 엔비디아
슈퍼컴퓨터 필요성 포착하고
20억弗 들여 '쿠다' 플랫폼 개발
금융위기땐 주가 폭락 위기도
딥러닝 부상하자 데이터 주목
AI반도체로 과감한 사업 전환
글로벌 시가총액 1위 찍기도
직원들과 수평적 소통도 한몫
슈퍼컴퓨터 필요성 포착하고
20억弗 들여 '쿠다' 플랫폼 개발
금융위기땐 주가 폭락 위기도
딥러닝 부상하자 데이터 주목
AI반도체로 과감한 사업 전환
글로벌 시가총액 1위 찍기도
직원들과 수평적 소통도 한몫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기업으로 알려져 왔던 엔비디아는 작년 총매출액 609억달러 중에서 게임용 GPU 매출은 17%밖에 되지 않는다. 대신 인공지능(AI)과 고성능 컴퓨팅을 위한 데이터센터 및 네트워킹 사업이 엔비디아의 최대 사업으로 부상해 전체 매출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용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98%의 점유율로, 경쟁사인 AMD나 인텔을 압도하고 있다.
PC나 게임 콘솔에서 사용되는 3D 그래픽카드를 개발·판매하던 엔비디아가 어떻게 AI 반도체 시장 선도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창업 이후 지난 30년간 가속 컴퓨팅 기술을 발전시키고 대중화하기 위해 엔비디아가 시도한 지속적인 혁신과 사업 전환의 누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93년에 젠슨 황 CEO와 동료 창업자는 기존 컴퓨팅 기술과 차별화된 가속 컴퓨팅이 필요한 시장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술적 비전으로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첫 번째 가속 컴퓨팅의 사업 영역은 PC의 그래픽 처리 속도를 가속하는 3D 그래픽 장치였다.
2000년대 초반에 이미 3D 그래픽 시장을 선도하고 있던 엔비디아는 양자화학 등 전혀 다른 분야 학자들이 GPU를 병렬로 연결해 슈퍼컴퓨터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학술 연구 분야에서 고속 컴퓨팅의 필요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2006년에 젠슨 황 CEO와 엔비디아는 기존의 게임용 GPU 구조를 병렬 연산 작업을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혁신적으로 바꾸고 이를 프로그램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쿠다(CUDA)를 개발한다. 게임용 GPU 회사가 고성능 슈퍼컴퓨터 업체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 엔비디아가 게임 시장이 주요 수입원임에도 불구하고 게임과 무관한 연산 기능을 추가하고 20억달러의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쿠다를 개발한 것은 모험적이고 많은 위험을 감수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의학, 화학, 생물학, 물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산 속도를 100~400배까지 혁신적으로 가속했지만,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서 글로벌 금융위기에는 엔비디아 주가가 70% 이상 하락하는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2012년에 엔비디아에 운명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미지 인식의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알렉스넷'이라는 딥러닝 알고리즘이 등장한 것이다. 토론토대 연구팀이 개발한 이 알고리즘을 통해 엔비디아의 GPU와 쿠다 플랫폼이 딥러닝에 최적임이 증명됐다. 딥러닝의 결과에 자극받은 엔비디아는 전 세계 AI 연구자들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엔비디아의 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검증하게 되고 드디어 2016년에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기업으로 전면적 사업 전략 전환을 결정한다. AI 전용 고성능 컴퓨팅 GPU를 지속해서 개발하고, AI 전용 슈퍼컴퓨터를 개발해 오픈AI 및 인공지능 선도 대학에 기증했다.
시장성이 증명되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엔비디아가 흔들림 없이 고성능 컴퓨팅과 AI에 투자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젠슨 황 CEO의 기술적 리더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 CEO는 기술 중심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미래 기술 변화의 방향에 대한 직관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알렉스넷'이라는 딥러닝 알고리즘이 등장했을 때, 사람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온다고 깨닫고 엔비디아의 모든 연구와 사업을 AI에 집중했다고 고백한다.
둘째, 엔비디아의 수평적 조직 구조와 투명하고 개방적 소통 방식은 시장 환경의 변화를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내고 기업 전략을 조직 전체에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었다. 황 CEO는 기술 중심 회사가 민첩하고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가져야 하고 조직원들에게 권한을 최대한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분기에 한 번씩 전 직원이 참여하는 미팅을 통해 회사의 핵심 전략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직원 전체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조직 전체가 공감하고 실행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셋째, 엔비디아는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과 실패에 대한 관용을 조직 학습과 혁신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기반으로 보고 있다. 황 CEO는 엔비디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위험을 감수하는 관용과 실패로부터 배우는 지적 정직함이라고 말한다. 기술 기업은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탐색과 실험이 필요하며, 실험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때 지적 정직함이란 구성원들이 실패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학습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정신 자세다. 구성원들이 실패하고 이를 통해서 함께 배우고 학습할 수 있는 문화가 엔비디아의 지속적인 기술 혁신 기반이라고 황 CEO는 강조한다. 기술 중심 리더십, 수평적 조직 구조와 투명한 소통, 혁신적 조직문화가 원동력이 돼 엔비디아는 지난 30여 년간 게임용 그래픽카드 회사에서 AI 반도체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AI 혁명기에 자신을 재창조하여 미래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한국 기업에 본보기가 될 만한 사례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