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7천억 규모 선제투자로 경쟁력 강화
연료비·정비비 줄여 12% 원가 절감 효과
'안주 대신 변화한다' 여세추이 강조
日 등 중단거리 여객 잡고 화물사업 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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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사장)가 최근 열린 창립 19주년 기념 행사에서 "차세대 구매 항공기 도입을 통해 도약 기반을 구축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구매기 도입을 통한 기단 현대화로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설명이다.
제주항공에 구매기 도입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국내에서 구매기를 도입한 항공사는 FSC(대형 항공사)를 제외하고 제주항공이 처음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지형 변화가 예고된 가운데 제주항공은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추진하는 티웨이항공과 에어부산, 에어서울과 통합 LCC(저비용항공사)를 추진하는 진에어의 견제에 밀리지 않고 LCC 1위 지위를 지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구매기는 이를 해결하는 핵심 키워드다.
2020년 6월 선임돼 올해로 4년째 제주항공을 이끌고 있는 김 대표는 아시아나항공을 거친 항공 산업 전문가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하던 시기에 제주항공 최고경영자(CEO)로서 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했다. 지주회사인 AK홀딩스와 제주항공 이사회 간 소통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책임질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돼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1965년생으로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해 미주지역본부장, 경영관리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김 대표는 "차세대 항공기 B737-8의 연료 효율이 우수해 기존에 운영하고 있는 기단보다 18% 수준의 절감 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초기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기존 운용 리스 방식 대비 12% 수준의 원가 절감이 가능한 것으로 내부에서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은 2018년 11월 보잉과 B737-8 50대(확정 40대, 옵션 10대)에 대한 5조7200억원 규모 구매 계약을 체결해 선제적으로 신규 항공기 물량을 확보했다. 팬데믹과 맞물려 당초 예정보다 도입이 늦어졌지만, 올해 4대 구매기를 순차 도입하는 등 기단 현대화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B737-8은 보잉이 제작한 차세대 중장거리 항공기로 기존 B737-800NG보다 운항 거리가 1000㎞ 이상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데믹을 기점으로 신규 항공기를 도입하려는 전 세계 항공사들의 수주가 밀려 있어 사실상 새 기재를 도입하려면 최소 3년에서 길게는 6년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신규 기재를 구하지 못하면서 중고기 품귀 현상이 일어나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신규 기재 구입을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 비용이 선행돼야 하지만 제주항공의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어 부담이 덜하다는 게 김 대표의 얘기다. 제주항공의 2023년 잠정 영업 실적에 따르면 연결기준 2023년 매출액은 1조7240억원으로 전년 7025억원 대비 145.4%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22년 4분기에 흑자 전환한 이후 5분기 연속 흑자 기조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적 전망도 긍정적이다. 임차 항공기를 운용하면 항공기 반납에 필요한 정비 비용이 발생하는데, 제주항공은 앞으로 이를 절감할 수 있다. 또 부채로 인식되는 정비 충당 부채를 해소해 부채 비율 감소에 따른 재무건전성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증권가에서는 2022년 9월 말 1913% 수준이었던 제주항공의 부채 비율이 올해 말 기준 350%로 대폭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엔데믹 이후 중·단거리 노선에서 선제적인 재운항 및 신규 취항을 통해 펜트업 수요를 흡수하면서 일본·괌·사이판·필리핀 노선에서 국적항공사 중 수송 실적 1위를 달성했다. 일본 노선의 경우 지난해 수송객은 356만명, 점유율은 20%에 달했다.
이 같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김 대표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틈나는 대로 노선 점검에 나서고 있다. 올해 초에는 마카오와 홍콩, 베트남 달랏 등 현지를 직접 방문해 노선 운영 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현지 업체들과 필요한 협업 사항 등을 체크했다.
마카오와 홍콩 노선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운항했지만 김 대표는 '팬데믹 때 운영을 멈췄던 만큼 신규 노선만큼 공들여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달랏은 지난해 제주항공의 7번째 신규 노선이자 달랏에 취항하는 국적항공사 최초 정기 노선이라 의미가 깊다.
여객 사업에 치중된 사업 구조로 코로나19 시기에 직격탄을 맞았지만 그 교훈 덕에 제주항공은 LCC로는 최초로 화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제주항공은 2022년 6월 국적 LCC 중 최초로 화물 전용기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2번째 화물 전용기를 도입했다. 특히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전자상거래 수요를 선점하고 고부가가치 품목인 리튬이온 배터리, 의약품, 반도체 등 수요를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최근 김 대표가 신년사에서 강조한 '여세추이(與世推移)'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김 대표는 "불투명한 국제 정세와 경제, 그리고 항공 산업 구조 개편 등 여느 해보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민첩하고 역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상이 변하는 대로 따라서 변한다'라는 뜻의 이 고사성어처럼 제주항공은 국내 항공 산업이 재편되는 혼란한 시기에도 LCC 1위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기꺼이 변화를 실천하고 있다.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이사
김이배 대표 △1965년 출생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미국 시러큐스대 MBA △1988년 아시아나항공 입사 △아시아나항공 미주지역본부장 △아시아나항공 경영지원본부장 △아시아나항공 전략기획본부장 △2020년 제주항공 대표이사 부사장 △2023년~ 제주항공 대표이사 사장
[조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