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인근에 대규모 철새 중간 기착지
정치권 논리로 무리하게 지어진 공항
활주로 확장 공사로 실제 길이 2.5km
![30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지점이 가벽으로 가려져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412/30/news-p.v1.20241230.4bad0696acfb4094b5f4cab5e57d1a70_P1.jpg)
제주항공 여객기(편명 7C2216, 보잉 737-800) 사고는 역대 국내 항공기 사고 중 세 번째로 인명 피해가 큰 사고로 기록될 전망이다. 사고 원인 중 하나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가 거론되는 가운데 참사가 발생한 무안공항이 설립될 초기부터 조류 충돌 가능성이 꾸준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30일 전라남도 등에 따르면 무안국제공항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지난 1999년 착공해 2007년 11월 8일 개항했다. 사업비 3057억원이 투입된 이 공항의 부지는 256만7690㎡이고, 활주로 길이는 2800m에 이른다.
9만여㎡에 달하는 계류장에는 항공기 9대가 동시에 주기할 수 있고, 주차장은 차량 2095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여객터미널은 연간 519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서남권 거점 국제공항’을 목표로 야심 차게 지어졌지만, 공항 건설 초기부터 조류 충돌에 대한 우려가 종종 제기됐다. 공항 인근인 무안군 현경면·운남면에 113.34㎢에 이르는 대규모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겨울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해서다.
보호구역에서는 약 1만2000마리의 겨울 철새가 관찰됐고, 무안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때도 “기체가 조류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2020년 당시 보고서는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조류 충돌 위험성이 크다”며 “이에 대한 저감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폭음기와 경보기, 레이저와 깃발, LED 조명 등을 활용해 조류 충돌을 최소화할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나 활주로 확장 사업이 완료되지 않아 이같은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412/30/news-p.v1.20241230.03f36736577244ccbe21f516d999021a_P1.jpg)
실제로 국내 14개 공항 중 비행기 총 운항 횟수 대비 조류 충돌 발생률이 가장 높은 건 무안공항이라는 분석 자료가 있다. 한국공항공사가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무안공항의 조류 충돌 건수는 지난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10건이었다.
이 기간 무안공항을 오간 여객·화물기는 총 1만1004편이었다. 운항 횟수 대비 조류 충돌 발생 비율이 0.09%로, 1만편이 오갈 때 조류 충돌이 9번 발생했다는 의미다. 절대적인 충돌 건수가 적다고는 해도 제주공항(0.013%), 김포공항(0.018%) 등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비율이다.
공항 건설·관리 과정에서 조류 충돌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건 비행 중 새가 비행기 동체나 엔진 등에 부딪힐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게가 900g에 불과한 청둥오리 한 마리도 시속 370㎞로 상승하는 비행기에 부딪히면 기체에는 4.8t에 달하는 충격이 가해진다고 한다. 또 엔진 속으로 조류가 빨려들어갈 경우 화재가 발생하거나, 엔진이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무안공항의 활주로가 다른 공항보다 짧다는 점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설계된 활주로는 2800m지만, 주요 국제공항보다 짧아 내년 완공을 목표로 3126m로 늘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 공사 때문에 실제로 이용 가능한 활주로 길이는 2500m 남짓이었다.
대형 항공기 이용이 잦은 국제공항에서는 대부분 활주로 길이가 3000m 이상이다.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3750~4000m이고, 김포국제공항(3200~3600m), 김해국제공항(3200m) 모두 무안공항보다 활주로 길이가 길다. 미국 JFK, 프랑스 샤를 드골, 도쿄 나리타 등 해외 주요 공항 활주로는 4000m가 넘기도 한다.
![30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 등이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412/30/news-p.v1.20241230.5c59c05a64114af8ac97b5f578378f7f_P1.jpg)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고의 주요 원인을 활주로 길이로만 돌리기에는 어렵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B737-800 기종의 경우 국제선보다는 국내선에 주로 쓰일 만큼 작은 규모의 항공기여서 활주로 길이만을 이유로 ‘위험한 공항’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견해다.
최기영 인하대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무안공항은 보잉 747이나 에어버스 350 같은 대형 항공기는 착륙하지 못하는 소형 공항이며 주로 동체 폭이 좁은 737기종 등 국내선이나 짧은 국제선을 오가는 항공기용 공항”이라며 “여건에 맞춰 국토부 인증을 받고 만들어진 거라서 상대적으로 짧은 활주로가 문제가 됐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 역시 사고 기종이 1.5~1.6km 길이 활주로에서 착륙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평소의 이착륙 상황과 동체 착륙 등 비상 상황에서는 구분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 역시 힘을 받고 있다.
랜딩기어를 내리지 못한 채 동체 착륙한 제주항공 항공기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활주로 끝단까지 가는 바람에 항행시설 구조물과 충돌해 피해가 커진 까닭이다. 동체 착륙한 항공기가 속도를 늦출 만큼 활주로가 길었다면 피해가 이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무안공항은 무리한 선거공약이 낳은 세금낭비 사례로 꼽히는 지역 공항 중 하나다. 1시간 거리에 광주공항이 있음에도 정치권의 논리로 건설이 이뤄졌고, 사고 전에도 ‘고추 말리는 공항’이란 오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용객이 없어 활주로에서 주민들이 고추를 말리는 장면이 목격된 까닭이다.
개항 전 연간 99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던 무안공항의 지난해 이용객은 24만6000명에 그쳤다. 전남도는 사고 수습 후 공항이 정상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번 참사로 공항 활성화에 다시 빨간불이 커졌다.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에는 최소 6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