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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카페 아니면 구경도 못해”…‘상품권 깡’ 인기만 높아지는 지역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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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지역화폐 '울산페이'는 최근 3년간 가입자 수가 20만명 넘게 감소했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할 수 있어 '풍선효과'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인접 지자체가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면 다른 지자체들도 소비 유출을 막기 위해 경쟁적으로 상품권을 발행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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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상품권 매출 증대 효과
대형 매장 위주로 치우쳐
새로운 소비 창출하지는 못해

인접 지자체 상품권 내놓으면
소비유출 막으려 경쟁적 발행

운영과정 특혜 의혹 불거지고
상품권깡·위조 사례 늘기도
3일 서울의 한 편의점 입구에 서울 페이와 지역화폐의 이름이 붙어 있다. [김호영 기자]
3일 서울의 한 편의점 입구에 서울 페이와 지역화폐의 이름이 붙어 있다. [김호영 기자]

울산 지역화폐 ‘울산페이’는 최근 3년간 가입자 수가 20만명 넘게 감소했다. 2022년 52만8000명이었던 울산페이 가입자는 올해 8월 기준 30만6000명으로 급감했다. 국고 지원 감소 등으로 한 때 10%에 달했던 울산페이 할인율이 7%로 떨어지자 인기가 식었다. 이에 더해 충전 한도도 최대 20만원으로 축소되면서 할인혜택보다 상품권을 구입하는 번거로움을 더 크게 느낀 주민들의 이탈이 늘어났다.

윤석열 정부가 지역화폐에 대한 국고 지원을 대폭 줄이면서 팬데믹 시절 영토를 크게 넓혔던 지역화폐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이 행정안전부 연구과제로 진행한 ‘지역사랑상품권 정책의 효과 분석 및 발전방향’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지자체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을 도입하면, 도입하지 않았을 때보다 업종별 평균 매출액이 12.28% 증대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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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낙수효과’가 고르게 퍼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세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취지와 달리, 매출이 작은 업체에는 매출증대효과가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한다. 연매출 50억원 이하의 사업체에서는 지역사랑상품권의 총공급액 비율이 1%포인트 증가할 때 업종별 매출액이 4.12%증가한 반면, 매출 10억원 이하의 사업체에서는 업종별 매출액이 2.9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상품권 발행 혜택을 보는 곳도 특정 상점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슈퍼마켓·편의점 등 종합소매업(26.4%), 식당·제과점·카페 등 음식점업(24.8%)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의 51%가 사용됐고, 미용실, 세탁소 등 개인 서비스업, 서점·문방구 등에서 쓴 비율은 각각 한자릿수 대에 그쳤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역화폐의 소비진작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기존 소비를 대체하는 데 그쳐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부작용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할 수 있어 ‘풍선효과’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인접 지자체가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면 다른 지자체들도 소비 유출을 막기 위해 경쟁적으로 상품권을 발행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곳간이 넉넉한 지자체가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0년 조세재정연구원이 발행한 보고서는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발행을 보조하지만 판매대행 수수료 등 제반비용은 지자체에서 별도부담하므로, 재정여건이 양호한 지자체에서 대규모 발행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기초·광역 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지역사랑상품권을 우후죽순 발행하다 일부가 도태되는 사례도 나온다. 대전에서는 2019년 대덕구가 지역사랑상품권인 ‘대덕이로움’을 발행했고, 이듬해인 2020년에는 대전시가 ‘온통대전’이라는 지역화폐를 신설했다. 2020년 4월부터는 대덕이로움이 온통대전과 병합됐다가 행안부가 광역 자치구 지역화폐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면서 ‘대덕이로움’은 폐지됐다.

3일 경기도 고양시의 재래시장에 고양페이와 지역화폐의 이름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이충우 기자]
3일 경기도 고양시의 재래시장에 고양페이와 지역화폐의 이름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이충우 기자]

지역화폐 운영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기도에서는 경기지역화폐 운용사인 코나아이라는 업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낙전수입(유효기간·채권소멸 시효가 지났는데도 이용자가 사용·환불하지 않은 금액)등 추가 수익을 배분할 수 있도록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경기남부경찰청은 특혜의혹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으나, 여권에서는 코나아이가 경기지역화폐 운용사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류(종이)로 유통하는 곳이 많아 부정수취 등 부정유통에도 취약한 편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 전국 190개 지자체에 대해 ‘2024년 상반기 지역사랑상품권 부정유통 일제단속’을 실시해 141건의 부정유통을 적발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유형별로는 소위 ‘상품권 깡’으로 불리는 부정수취·불법환전이 56건으로, 전체의 39.7%를 차지했다. 상품권으로 선결제를 하거나 외상값을 일괄 결제하는 사례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역 특성에 맞게 운용될 경우 지역경제를 활성화의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경북 포항시는 지역화폐인 ‘포항사랑상품권’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자 개인연간 구매한도를 이달부터 600만원에서 800만원으로 200만원 늘렸다. 할인율은 7%로 다른 지역상품권과 비슷하지만, 2만1000여개로 상품권 사용가능한 가맹점이 많다. 지난 5~9월에는 착한가격업소에서 포항사랑상품권으로 결제하면 다음 달에 할인율과는 별개로 추가 5%캐시백을 지급한 것도 인기 비결로 꼽힌다. 포항사랑상품권은 2017년 이후 누적발행액이 2조원을 넘었다.

통칭 지역화폐로 불리는 지역사랑상품권은 1996년 지역 경기를 살린다는 취지로 강원 화천과 충북 괴산이 자체 재원으로 발행했다. 해당 지역에서만 화폐처럼 사용하는 상품권으로 지역주민에게 할인판매하는 형태다. 2018년 지역 산업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은 군산, 거제 지역이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며 한시적으로 국고 지원이 이뤄졌다.

이후 2020년 팬데믹 사태 때 당시 문재인 정부가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지역화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국고 지원에 나서면서 전국으로 확산했다. 당시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랑상품권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 내 소상공인 보호를 목적으로 지자체가 발행하는 상품권. 지자체나 가맹점을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로 교환할 수 있다. 1996년 강원 화천과 충북 괴산에서 발행된 것을 시초로 보며, 2020년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대전 = 조한필 기자, 울산 = 서대현 기자, 춘천 = 이상헌 기자, 인천 = 지홍구 기자, 대구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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