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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유니콘 환승' 꿈꾸는 1000개社 모였다…이곳은 혁신의 기차역

한재범 기자
입력 : 
2024-05-27 1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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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 스타트업 캠퍼스'
프랑스 스테이션 F 가보니
민간기업인 사비 투입해 완성
기차역 개조해 창업거점 변신
한지붕 아래 혁신시너지 모색
애플·MS·메타 글로벌기업도
될성부른 스타트업 찾아 입주
"1분 거리 소통·협업 가능해"
사진설명
프랑스 파리 13구 '혁신 스타트업 1번지' 스테이션 F에는 활기가 넘쳤다. 수백 명의 스타트업 대표가 실리콘밸리를 연상시키는 편한 복장에 둥근 테이블에서 격의 없는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사업 의견을 나누는 목소리로 떠들썩한 이곳에는 약 1000개의 스타트업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다. 분위기만 봐도 '창조와 혁신'이라는 새로운 프랑스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듯했다.

스테이션 F는 길쭉한 기차역 플랫폼 구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에 있던 기차역(station)을 폐쇄한 뒤 개조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들어갈 때에도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들어간다. 원래 용지였던 기차역에 들어서는 느낌을 주자는 발상에서 착안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캠퍼스는 3개의 큰 '몸통'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입주자들이 대강당에서 사업 프레젠테이션(PT)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셰어존(Share Zone)'이다. 두 번째로는 스타트업과 글로벌 빅테크 등이 사업과 관련해 실질적인 업무를 진행하는 '크리에이트존(Create Zone)', 마지막으로는 푸른색 난초들이 거대한 기차 모형을 감싸고 있는 떠들썩한 식당가 '라펠리시타(La Felicita)'가 연결돼 있다.

스테이션 F의 크리에이티브존에 위치한 파운더스 프로그램과 파이터스 프로그램 존에서 상주 인력들이 근무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의 입주 오피스도 보인다. 한재범 기자
스테이션 F의 크리에이티브존에 위치한 파운더스 프로그램과 파이터스 프로그램 존에서 상주 인력들이 근무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의 입주 오피스도 보인다. 한재범 기자


약 1만285평 크기의 스테이션 F는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캠퍼스다. 작은 스타트업들이 이곳에 앞다퉈 입주하려는 것은 '소통의 허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캠퍼스의 두 번째 부분인 '크레에이트존'에 들어서자 스테이션 F에 입주해 있는 수많은 글로벌 대기업의 로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로레알, LVHM.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이 기업들은 스테이션 F에서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주목하고 가까이에서 소통하길 원하는 수많은 대기업 중 일부에 불과하다.

바캉 텅제 스테이션 F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불과 1분 거리에서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며 "이 정도로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한 스타트업 캠퍼스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이것은 마법과도 같다"고 말했다.

텅제 디렉터에 따르면 매년 스테이션 F 내 입주 기업들과 기성 기업들 간 최소 30여 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그는 "메타는 미래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자사 기술에 쓰일 스타트업을 물색하고 있다"며 "애플을 통해 앱 서비스를 원하는 스타트업도 스테이션 F의 애플 상주직원과 직접 소통하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입주 스타트업 인력들이 공개적으로 사업 프레젠테이션(PT)을 하거나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장소인 셰어존. 한재범 기자
입주 스타트업 인력들이 공개적으로 사업 프레젠테이션(PT)을 하거나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장소인 셰어존. 한재범 기자
각종 행정 지원과 투자 네트워킹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스테이션 F의 프로그램은 크게 극초기 단계인 '파이터스(fighters)', 유망 단계인 '파운더스(founders)', 성숙 단계인 '그래듀에이터스(graduators)'로 나뉜다.

파이터스 프로그램은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한 초기 스타트업이 참여한다. 파운더스 프로그램은 스테이션 F가 직접 선정하는 유망 스타트업도 구성된다. 파운더스 프로그램에 선정된 스타트업의 40%는 실제 기업으로 성장해 캠퍼스를 '졸업'하게 된다. 네이버가 스테이션 F에서 조성한 '그린 스페이스'에서 첫출발을 했던 챗봇·자연어처리(NLP) 유니콘 스타트업 '허깅페이스'도 이 과정을 거쳤다.

그래듀에이트 프로그램은 보다 성숙한 기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투자 유치에 도움을 준다. 일부는 스테이션 F에서 지분을 사들여 직접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스테이션 F에 따르면 현재 약 500개가 넘는 투자 기관과 제휴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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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제 디렉터는 "수많은 스타트업을 한 지붕 아래에 모아 시너지 효과를 만드는 이 모델은 해외에서 벤치마킹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이곳을 방문한 이후 중소벤처기업부가 이와 유사한 창업 허브를 조성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스테이션 F는 민간 조직이다. 프랑스 통신사 프리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로 알려진 자비에 니엘이 사비 2억5000만유로를 투자해 2017년 완성했다. 이 같은 민간 차원의 노력에 더해 프랑스 정부의 일관된 스타트업 지원 정책은 '스타트업 불모지'였던 프랑스를 더욱 스타트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고 있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정책지원 기관 라프렌치테크에 따르면 2010년 약 9억유로에 불과했던 프랑스 내 스타트업 투자 유치액은 2022년 150억유로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대 액수로, 처음으로 독일을 추월한 것이며 유럽 내외에서 영국 다음으로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라프렌치테크 관계자는 "프랑스가 높은 세금을 부과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우리 법인세는 25%로 유럽 평균을 밑도는 수준"이라며 "연구개발(R&D) 세금 역시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고 외국인용 '스타트업' 비자 발급 기간은 평균 2주로 독일(12주)과 영국(8주)에 비해 매우 짧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파리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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