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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탈 쓴 먹튀?…분노한 DB 개미들

최창원 기자
입력 : 
2024-12-02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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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또, 또…‘평판 리스크’ 직면한 KCGI

DB하이텍 소액주주 연대가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를 검찰 고소했다. KCGI가 DB하이텍 지분을 매입·매각하는 과정에서 ‘그린 메일(Green-mail)’ 행태를 보였다는 주장이다. 그린 메일은 경영권 위협을 앞세워 대주주 측에 프리미엄을 받고 이익 실현을 추구하는 행위다. 달러화의 ‘초록색’ 이미지를 따 그린 메일로 불린다. KCGI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DB그룹이 자신들이 제시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대거 수용했고, 목적을 달성해 지분 매각을 결정했다는 것.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없는 엑시트(투자금 회수)라는 반박이다.

DB하이텍 소액주주 연대가 KCGI를 검찰 고소했다. 사진은 강성부 KCGI 대표. (연합뉴스)
DB하이텍 소액주주 연대가 KCGI를 검찰 고소했다. 사진은 강성부 KCGI 대표. (연합뉴스)

KCGI는 어떤 곳

주주 행동주의 표방

KCGI는 크레디트 애널리스트 출신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다. 자본 시장에서 강 대표는 자타공인 ‘지배구조 전문가’로 통한다. 동양증권 애널리스트 시절이던 2005년, 국내 최초로 100대 기업 지배구조를 완성한 보고서를 발간해 유명세를 탔다. 강 대표는 2015년 ‘관찰자’에서 ‘플레이어’로 역할을 바꾼다. LIG그룹 사모펀드 운용사인 LK파트너스 대표 자리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사모펀드 업계에 발을 들인 것.

2018년 7월 강 대표는 대기업 자본에서 독립해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한 사모펀드 운용사 KCGI를 설립했다. KCGI는 강 대표의 특장점인 ‘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췄다. 지배구조 때문에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 기업가치를 올리는 주주 행동주의를 외쳤다. 이후 KCGI는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다. 2018년 한진그룹 총수 일가들의 도덕성과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며 한진칼 지분을 매입,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표 대결까지 가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게 컸다. 이때 자본 시장은 물론이고 재계와 투자자에게도 확실한 인상을 심었다. 이후로도 KCGI는 오스템임플란트와 DB하이텍 등 내부통제와 지배구조 문제 이슈가 생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행동주의 명분을 앞세워 실리만 챙긴다는 비판도 나왔다.

무슨 일 있었길래

9개월 만에 지분 매각

KCGI가 DB하이텍을 정조준한 건 지난해 3월이다. DB하이텍이 팹리스 부문(현 DB글로벌칩) 물적분할 계획을 내놓은 뒤다. KCGI는 DB하이텍의 물적분할 선택을 ‘지배구조’와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DB하이텍 모회사인 DB Inc.(DB아이엔씨)의 지주회사 전환을 피하기 위해 물적분할을 결정했다고 봤다. 당시 DB아이엔씨는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는 상태였다. 공정거래법은 ①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 ②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이 지주사 자산총액의 50% 이상을 법적 지주사 전환 요건으로 설명한다. 이에 부합하면 지주사는 자회사(상장사 기준) 지분을 2년 안에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DB아이엔씨는 치솟을 대로 치솟았던 DB하이텍 지분을 대거 매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시장 반발이 큰 물적분할을 발표해 의도적으로 DB하이텍 주가를 낮추고 지주사 전환 요건을 면했다는 게 KCGI 측 논리였다. 당시 KCGI는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주·시장과 소통이 부족해 소액주주들과 상당한 갈등과 반목이 있었다”며 “지주회사 제한 요건을 피해 가기 위한 일시적인 대처라면 이는 매우 근시안적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지적했다.

KCGI는 비판과 함께 DB하이텍 지분 약 313만주(7.05%)를 취득하고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DB하이텍 소액주주 연대와 손잡고 이사회 회의록·회계장부 열람 신청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지분 매입 9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KCGI는 돌연 손을 뗐다. 경영구조 개선을 이뤄냈다며 DB하이텍 보유 지분 대부분을 DB하이텍 모회사인 DB아이엔씨에 블록딜로 넘겼다. 가격은 당시 종가와 비교해 약 12% 높은 주당 6만6000원(총 1650억원). 지배구조 개선은커녕 물적분할도 진행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KCGI는 지분을 매각한 뒤 ‘우호적인 거버넌스 개선의 모범 사례’ 평가를 내렸다.

블록딜 이후 DB하이텍 주가는 꾸준히 하락세다. 지난해 12월 주당 6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11월 3만원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동시에 KCGI가 자신들에게 비판적 글을 남긴 DB하이텍 주주를 고소한 뒤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소액주주 연대는 분노했다. 블록딜 10개월 뒤 갑작스레 검찰 고소가 진행되는 배경이다. 참을 만큼 참았지만, KCGI가 선을 넘었다는 것이 소액주주들 주장이다. 소액주주 연대 입장은 분명하다. KCGI가 DB하이텍 주식을 사들인 뒤 되팔면서 주가가 하락했고 다수 일반주주가 손실을 입은 만큼 KCGI와 DB아이엔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혐의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소액주주들은 사전 공모 의혹도 제기했다. KCGI와 DB하이텍이 사전에 짜놓은 판에 개미만 끌어들였다는 의혹이다. 소액주주 연대 측은 블록딜 거래가를 근거로 삼는다. 통상 블록딜의 경우 시장 가격에 일정 비율을 할인한 금액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하지만 DB아이엔씨와 KCGI 거래는 당시 시가 대비 12%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 이를 토대로 봤을 때 사전에 합의된 블록딜 아니냐는 게 소액주주 연대 측 목소리다. 이에 대해 KCGI 측은 사전 공모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한다.

KCGI 평판 리스크↑

매번 반복되는 사례

잡음이 불거지며 KCGI를 둘러싼 평판 리스크도 커지는 분위기다. 매번 행동주의는 명분이고 실리만 챙긴다는 지적이 불거진 게 뼈아픈 대목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한진칼 대상 행동주의도 지배구조 측면에선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당시 KCGI가 제시한 주주제안도 모두 부결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KCGI는 2000억원 이상 차익을 냈다. 2022~2023년 오스템임플란트 사례도 마찬가지다. 지배구조 개선 등을 외치며 손을 댔지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지분을 매각했다. 물론 실리는 제대로 챙겼다.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차익만 5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KCGI는 행동주의에서 ‘바이아웃 펀드(경영권 인수 후 구조조정·M&A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엑시트하는 펀드)’로 지향점을 바꿨다. 하지만 시작부터 논란이 불거졌다. KCGI는 지난 9월 한양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지분 29.6%에 2200억원 가격을 제시했다. 주당 5만8000원꼴이다. 매각설이 돌기 전 시가(1만5000원대)와 비교하면 약 4배 높은 가격이다. 퍼센트로 따지면 280% 이상 비싼 값이다. 통상 30~70% 수준인 국내 평균을 훌쩍 웃돈다. 그간 경영권 프리미엄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대주주와 소액주주 가치를 차별하지 말라”고 외쳐온 것과 상반된 행보라는 점에서 관련 업계가 시끌시끌하다.

평판 리스크를 두고 KCGI 측은 일종의 성장통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KCGI 관계자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성장통이고, 겪고 나면 단단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만큼 우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생각을 하고, 투자 관련 내부 정책 등을 고도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7호 (2024.12.04~2024.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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