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기아는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에서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이와 비슷한 개념을 언론 및 업계에서 언급한 적은 있지만 이를 공식 개념으로 도입하고, 이 개념에 따라 실제 양산차 라인업을 구축한 것은 기아가 처음이었다. PBV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 및 제작, 운행에 이르기까지 목적을 달성하는 데 충실하도록 설계된 맞춤형 교통수단이다. 이를 쉽게 풀어쓰면 소비자의 목적에 맞게 차량을 알아서 개조할 수 있도록 여러 형태의 차종으로 변신이 가능한 하나의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기아가 공개한 PBV 컨셉트 이미지들. 기아 홈페이지
처음으로 이 개념을 밝히고 4년이 지난 2024년, 기아는 세계 최초로 PBV 라인업을 구체화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아는 지난 9월 23일 홈페이지 기아닷컴에 PBV 페이지를 개설했다. 언론 및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밝혀오던 PBV 라인업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아의 PBV 라인업 출시가 머지않았음을 의미한다. 이 페이지에는 PBV 라인업 중 가장 빠른 시점인 2025년 출시를 예정하고 있는 '기아 콘셉트 PV5'의 특징과 주요 사양, 외관, 실내 모습 등이 공개돼 있다. PBV 라인업의 기수인 PV5는 승객 운송용인 패신저 모델과 운송용인 카고 모델로 출시될 예정이다.
기아가 공개한 PBV 컨셉트 이미지들. 기아 홈페이지
"차량은 플랫폼에 불과하고, 소비자 니즈에 맞춰 차를 변화시킨다"는 목적에 맞게 PV5는 모델별로도 다양한 레이아웃을 제공한다.
먼저 패신저 모델의 경우 기본적으로 1열 2석, 2열 3석의 5인승 구조를 지닌다. 만약 뒷좌석 편의성을 높여 임원을 모실 경우 PV5는 트렁크 공간에까지 2열을 밀어넣어 넓은 레그룸을 확보하는 모델로 변신한다(2-0-3구조). 어린이집 차량처럼 기사가 운전하고 뒷자리에 더 많은 사람을 태우려면 1열 1석(운전석)과 2열 2석, 3열 2석으로도 시트 구조를 바꿀 수 있다(1-2-2구조). 아예 많은 사람이 타야 한다면 시트를 한 개 추가해 1열 2석, 2열 2석, 3열 2석의 6인승 구조도 가능하다(2-2-2구조).
기아는 PV5의 이 같은 범용성을 강조하며 적용 가능한 서비스도 함께 제안했다. 택시 등 여객 운송 서비스의 경우 6인승 구조를, 프리미엄 여객 운송의 경우 2-0-3구조를 활용하는 식이다.
기아가 공개한 PBV 컨셉트 이미지들. 기아 홈페이지
PV5 카고 버전의 경우 범용성은 더욱 높아진다. 카고 버전은 카고 컴팩트, 카고 롱, 카고 하이루프, 카고 워크스루 등 4개 버전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갈아끼울 수 있다. 컴팩트 버전은 가장 기본형 모델로 전장이 4500㎜로 니로와 비슷한 길이로 설계됐다. 이를 롱 버전으로 바꾸면 전장은 쏘렌토와 비슷한 4700㎜로 늘어난다. 하이루프 버전은 전고가 2200㎜로 일반 모델에 비해 30㎝가량 천장이 높아진다. 큰 짐을 싣는 택배차 등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카고 워크스루는 화물 적재함과 운전석 사이에 슬라이딩 도어를 배치해 운전자가 화물칸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버전이다.
기아는 PV5를 활용한 2개 버전을 더 준비하고 있다. PV5 오픈베드는 같은 PV5 플랫폼을 활용해 구성한 픽업트럭이다. 오픈베드 버전에서는 개방형 짐칸으로 마련된 공간에 냉동실을 탑재한 PV5 냉동탑차 버전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고객으로서는 PV5 1개 차종을 선택하면서 승용부터 상용까지 총 10개 종류의 차량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기아가 공개한 PBV 컨셉트 이미지들. 기아 홈페이지
기아는 PV5를 포함해 단거리 물류 특화 PV1, 장거리 운송 최적화 PV7 등 다양한 PBV 라인업을 출시할 계획이다. 최근 송호성 기아 사장은 "이제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PBV를 설정하고,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플랫폼으로서의 본격 전환을 준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판매량 목표치는 2030년 PV5 연간 15만대, PV7 10만대다.
기아는 우선 승용 분야에서 뚫지 못한 일본 시장을 PBV를 통해 새로 개척하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월 기아는 일본 종합상사인 소지쓰와 현지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소지쓰는 일본 주요 종합상사 중 하나로 자동차부터 에너지, 금속, 화학, 식품 등을 판매한다. 이번 계약은 내연기관 자동차에 이어 아이오닉5도 뚫지 못한 일본 시장을 PBV 라인업을 통해 새로 개척하겠다는 의지다. 일본 시장의 PV5 판매 개시 시점은 2026년이다. 일본 시장 특성을 고려해 일본식 전기차 충전 방식인 '차데모'도 탑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차량공유 플랫폼, 택배업계 등과 접점을 넓혀나가고 있다. 기아는 올해에만 우버, 쿠팡, CJ대한통운, 카카오모빌리티 등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특히 우버 드라이버 및 탑승 고객을 위한 최적 사양을 찾아내 이를 기반으로 특화된 PV5 모델을 생산해 공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