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들 “전세 매물 실종 불가피”
전문가 “10·15 대책에 기름 붓기”
신혼부부 등 신규 임차인만 피해

임차인이 한 주택에서 최대 9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전세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임대인들 사이에서 “9년 동안 계약이 묶이면 누가 전세를 놓겠느냐”는 반발이 거세지고, 전문가들은 전세 매물 실종으로 오히려 임차인들이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의원 10인은 지난 2일 계약갱신청구권을 현행 1회에서 2회로 확대하고, 갱신 시 임대차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총 9년까지 늘리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이날 오후 기준 해당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수천 건 달렸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임대인들의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한 임대인은 “9년이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해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인데, 그 사이 집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손도 못 대고 있으라는 소리냐”며 “차라리 집을 팔거나 월세로 돌릴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임대인도 “2+2도 부담스러웠는데 3+3+3은 말이 안 된다”며 “이미 전세 내놓은 집주인들도 매물 회수하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현행 ‘2+2’ 계약갱신청구권 법 시행에 따라서도 이미 전세 물량의 축소와 신규 계약 시 보증금 상승이 나타난 바 있다”며 “‘3+3+3’으로 법이 바뀌면 신혼부부 등 신규로 시장에 진입하는 임차인들이 전세 물량을 찾지 못하거나 고가 전·월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15 부동산 대책으로 분양 아파트 등 수요가 높았던 지역의 전세 공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는데 개정안까지 통과되면 임대차 시장의 혼란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9년 동안 계약이 묶이면 주택을 적당한 때 팔아 시세 차익을 보기 위해 시장에 뛰어드는 전세 임대인 대부분이 시장을 이탈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임차인들의 저렴하고 안정적 주거를 보장하자는 법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세 공급 부족으로 정작 보호받아야 할 신규 임차인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임대인들은 9년 뒤 시세를 고려해 보증금을 무리하게 인상하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계약 갱신 시 임대료 증액 상한이 5%로 제한돼 9년 동안 임대료 인상 폭은 최대 10.25%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진 뒤 전세 매물을 회수하거나 월세 전환을 문의하는 집주인들이 부쩍 늘었다”며 “이런 추세라면 전세 시장이 사실상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표발의자인 한창민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로 “임차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2019년 3.2년, 2021년 3년, 2023년 3.4년으로 임차인의 거주 안정성이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선의의 입법이 오히려 임차인에게 독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